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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랑 Mar 25. 2017

#4 낡은 것과 오래된 것.

너무 새롭고 좋은 것에 대한 '불편함' 그리고 '이질감'

(※커버 사진은 단순히 공유가 좋아서 넣었을 뿐, 글의 내용과는 1의 관련도 없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서울이란 동경의 대상이다.


언제가도 신기하고 새롭고 뭔가 더 세련돼 보이기 마련이다. 네모 반듯하게 잘 나눠지고 바둑판 같은 8차선 도로가 깔려 있는 강남 한복판. 모던하면서 정신없고 자본주의적이다.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최첨단 소재와 최신 디자인을 갖춘 건물들과 깨끗한 골목,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귀티가 흐르고 산책하는 개 마저도 금수저처럼 보이는 동네.

그런 곳을 동경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낡디 낡은 빛바랜 건물로 가득찬 도시가 좋다.

 

서울 성북동의 한 골목. 서울에서 이런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골목이 아직 남아있다니 감격스럽다.

벽은 다 해지고 흰 페인트벽 건물에 거뭇거뭇한 자국이 남아있는 건물,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장, 할머니 엄마 아이 3대가 모두 걸어다녔을 붉은 벽돌 골목길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내가 이 세상에 살다 간 흔적도 골목 어딘가에 묵은 때처럼 남겠지. 나의 사랑하는 가족도, 지인들도 모두.


그래서인가.

나는 일명 '삐까번쩍'한 건물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한 번은 취재로 두바이에 갈 일이 있었다. 아랍에미리트연방의 한 토후국인 두바이는 도시국가이면서도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도시 중 하나다. 원래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계 무역을 하면서 진주조개잡이를 하던 사막의 한 도시였던 두바이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석유 매장량이 많지는 않았던지라 두바이는 체질 개선에 나섰다.

그림같은 도시의 스카이라인. 계속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어서 몇 년 뒤의 두바이는 또 다른 모습일거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텅 빈 사막이었던 이곳이 불과 몇십년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빌딩들이 들어섰다. 

지리적 위치를 활용해 중동의 금융중심지로 발전하고, 각 대륙을 연결하는 허브공항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호텔, 놀이공원, 쇼핑몰 등을 세우며 전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두바이가 눈부시게 발전한 모습을 보면 "Dreams come true~"가 절로 생각난다. ( BGM♬ - S.E.S의 Dreams come true ) 인구 50만명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도시에 들어선 건물들은 마치 SF 영화를 방불케 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828m)인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 카메라에 다 담기 어려울 정도로 하늘 높이 솟아있다.

하늘을 찌를듯한 부르즈 칼리파(2017년 기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를 시작으로 두바이 다운타운에 밀집해있는 높은 건물들과 그 스카이라인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우와 대단하다~ 신기하다~"


하지만 그걸로 이다. 참 신기하다. 번쩍거리는 대리석 같은 고급스러운 건축 자재들을 가져와 정성스레 지었을 것이다. 전세계 최고(最高)로 높은 건축물을 짓겠다는 일념하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곳에서 죽어난 노동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두바이인이 아니라 대체로 주변 국가에서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였을테고.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니 감탄하던 것도 딱 거기까지였다.


부르즈 칼리파 148층 전망대 'At the Top Sky'에서 바라본 두바이의 야경. 화려하고 번쩍이는 모습에 갑자기 내 자신의 존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온 손님인 나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을 것. 어느 곳을 가나 모든 것이 새롭게 조성되고 깨끗하고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너무 화려하고 좋고 럭셔리한 것을 인간이 마주하게 되면 오히려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나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 아닌지라 현재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고 곧바로 인식하고 나 스스로를 타자화시킨다. 나는 단지 이곳의 '이방인'일 뿐이라고. 이런 것들이 일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외부인'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혹시나 나의 실수로 무언가를 깨뜨리거나 더럽히지는 않을까 조심하게 된다. 행동 하나 하나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배려로 두바이에서 좋은 경험, 맛있는 음식,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었지만, '불편함'과 '이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이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또 어느 곳에서는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는지.


대만 타이페이 지하철의 모습. 타인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녹아드는 여행이 좋다.


비록 외국에서 왔고 그 나라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여행지를 가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을 사는 현지인들에 녹아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모습. 길거리에서 혼밥을 하다가 음식을 흘리면 옆자리 혼밥러가 자연스레 휴지를 건네주는 상황. 어딘가 모르게 여행지가 친숙하게 느껴져서, 떠나는 날에는 마치 고향을 떠나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기러기 직장인이나 유학생의 마음이 드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오는 타이페이의 한 거리. 비로 축축하게 젖은 건물이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에게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은 이렇게 새롭고 깨끗하고 뭐든지 최첨단인 곳은 아닌  다.

적어도 낡고, 오래되고, 사람들의 손떼가 잔뜩 묻어있지만 사람 냄새가 나고, 활기가 있고, 작지만 고즈넉한 분위기가 나의 취향인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만은 참 마음에 드는 여행지였다.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잘 지키는 민족이었다. 겉보기엔 소박하지만 내실은 튼튼한 민족. 복잡한 역사적 이유로 중국 본토에서 작은 섬으로 옮겨왔지만 중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는 모습. 그 역사와 뿌리를 소중히 여기며 오랜 골목길이나 건물도 갈아엎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타이페이에서 약 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용산사. 불교 도교 유교가 혼합된 이곳은 대만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묻어있다.


다음에도 여행을 떠난다면 그런 오래됨과 낡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곳을 선택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다음에는 어느 곳으로 떠나야할까.


March 25th,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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