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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s Fong Apr 29. 2020

너를 처음 본 순간,

마카오에서 임신, 출산 하기 Chapter 2.


  마지막 검사 이후 2주를 기다려야 했다. 임산부라면 필수로 다운로드하는 어플을 받고, 하루하루 아기의 성장을 나타내는 그림을 바라봤다. 사람의 형체라고도 하기 힘든 작은 점 같은 아기. 이 아기가 점점 팔다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음 초음파가 어찌나 궁금하던지, 아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떨렸다.


  보통 임신 사실을 알리는 '임밍 아웃'은 아기의 심장 소리를 확인하는 8주 차 이후부터 한다. 아기의 심장 소리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유산의 위험성도 있고, 확실히 아기가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기의 심장소리만 확인할 수 있다면,  모든 걱정이 일단은 일단락될 것 같았다. 임신 초기에 관련한 무수히 많은 초록 창의 글, 블로그, 맘 카페는 아기의 심장소리를 확인하기 직전까지 내 마음속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드디어 그 날이 왔고, 초음파로 처음 아기를 만났다. 8주 차인 아기의 크기는 1.4cm. 작은 손톱만 한 크기의 이 아기는 벌써 팔다리도 생겼고, 그 작은 생명체가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 반짝반짝거리는 거 보이죠? 아기의 심장이에요"

  그러고 나서 의사는 곧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려주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그 장면.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고 눈물을 훔치는 부부의 모습. 그런 클리셰는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던 나였지만, 막상 심장소리를 들으니 내 모든 걱정이 녹아내리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여기서 울면 내가 싫어했던 뻔하디 뻔한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모습이 될까 봐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커튼 너머에서 같이 초음파를 바라보고 있던 남편이 훌쩍거리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습던지, 나는 웃었고 남편은 울었다. 너무 웃는 바람에 뱃속에 있는 초음파 기계가 흔들려서 화면이 왔다 갔다 했다.


  아기의 모습은 마치 작은 새싹이 나있는 강낭콩 같은 모습이었다. 작은 팔다리를 나름대로 힘차게 뻗고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한동안 입덧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렇게 크느라 그랬구나 싶었다. 불과 2주 전에는 아무것도 안보이던 아기집 속에서 이렇게 사람의 모습으로 자라나 저 작은 몸에서 심장도 뛰고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생명의 신비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내 몸속에 내재된 DNA가 나도 모르는 사이 이런 생명을 품게 되는 과정을 겪고 있었다는 게 소름 끼칠 정도로 위대했다.


  이제 아기는 '배아'의 시간을 지나 인간의 모습을 한'태아'가 되었다. 가끔은 이 작은 생명체가 누군지도 아직 잘 모르면서, 벌써부터 내가 대신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저 아기가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기만을 바란다. 혹시나 먼 훗날, 아기에게 너무 많은 부담과 기대를 갖는 엄마가 되어버렸다면 오늘의 이 마음을 다시 새겨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2019년의 나는 아기가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부모님께 임신 소식을 알렸다. 겉으로 티 내시지는 않았지만, 결혼한 지 4년이나 지났기에 부모님도 내심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떤 서프라이즈로 알려드릴까 싶었지만, 입이 근질거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갔던 한식당에서 즉흥적으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해? 나는 저녁 먹으러 나왔어"

  "그냥 아빠랑 있지 뭐, 저녁 맛있게 먹어 딸"

  "엄마, 아빠는 어딨어? 아빠랑도 같이 통화하게 스피커 폰으로 바꿔봐"

  "응~ 딸, 왜~"

  "엄마 아빠! 축하해 할머니 할아버지 됐어"

  "악!!!!! (엄마는 소리를 지르시며 그 자리에서 엉엉 우셨다)"

  "잘했다, 우리 딸 잘했어"


  좋아하실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다. 평소 항상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을 안 하시던 우리 아빠. 장학금을 타 왔을 때도 잘했단 소리를 안 하셨던 분인데, 처음으로 잘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멀리 타국에 떨어져 사는 딸이라,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소식을 전해드릴 수는 없었다는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곧 친구들에게도 조금씩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많은 축하를 보내주었다. 이 날밤은 완벽하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더 좋은 순 없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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