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에서 임신, 출산 하기 Chapter 4.
보통 '출산'이라 하면 행복, 새로운 생명의 시작, 기쁨, 환희 등 긍정적인 단어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나 또한 임신을 하기 전까지는 '임신 여부' 즉 테스트기에 두 줄이 선명이 그어지는 드라마틱 한 장면만 떠올랐지, 그 내면에 어떠한 과정을 겪게 되리라는 것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예상치도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팬더믹 현상으로 나는 담당 산부인과 의사를 5번이나 바꾸게 되었다.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한국으로 그리고 다시 마카오로. 전 세계적인 팬더믹 현상 속에서 나 혼자만 임산부인 것도 아니고 나와 비슷한 일을 겪는 임산부들도 알게 모르게 많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출산을 앞둔 나에게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비행 편이 모두 캔슬됐을 뿐 아니라 오더라도 자가격리를 해야 해서 오지 못하시는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그리고 일가친척들. 나는 마카오라는 낯선 땅에서,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 낯선 땅에서 남편과 나. 단 둘이 견뎌내야 하는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더더군다나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 책으로 남편은 출산 시 수술방에 들어 올 수도 없다. 우리 사랑의 결실인 이 작은 아이의 생명의 탄생이라는 고귀한 순간에 남편은 탯줄 자르기 마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인간의 고통의 극한이라는 '출산'의 순간에 나는 타지에서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남편이 옆에서 함께 손이라도 잡아주고, 통역에 도움이라도 준 다면 큰 힘이 될 텐데, 나 혼자 차가운 출산 침대에 누워 출산을 맞이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한국과는 많이 다른 산부인과 시스템. 당연히 내 담당 의사가 내 아기를 받아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담당의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만 할 뿐, 실질적인 모든 과정은 간호사와 조산사가 함께 한다고 했다. 그래도 설마, 회음부에 칼을 대야 하는 순간에는 의사가 있지 않겠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 마저도 조산사가 한단다. 출산이라는 극한의 순간에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합을 맞추어 생명을 낳아야 했다.
만약 나에게 응급 상황이 일어난다면? 응급 상황에 언어 소통이 제대로 안돼서 처치가 지연된다면? 갑작스러운 의식 불명의 상태가 된다면?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남편이 어떻게 우리 가족에게 그 사실을 전할 것인가.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는 것을 제일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하는 나지만, 이번엔 생각이 많아졌다. 정말 만약, 예상치 못하게 내가 내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 누가 내 생각을, 내 마음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인가.
좀 이르긴 하지만, 남편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99.9% 겠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게 '만약'이라는 전제를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아이와 산모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면 나 말고 아이를 선택해 줄 것. 만약 내가 출산 도중 사망하는 일이 생긴다면, 장기를 기증할 것. 그리고 나를 한국으로 보내줄 것.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나를 화장해서 동해바다에 뿌려줄 것. 나를 마카오에 묻어주지 말 것.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고국으로 꼭 돌아가고 싶다는 말과 함께.
남편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 두라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겪게 될 출산이 공포감으로 다가오는 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많은 진통을 하게 될 까, 아기는 건강하게 잘 나올 수 있을까. 코로나 바이러스는 잠잠해 질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이제 출산이 열흘 여 앞으로 다가왔다.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물론, 내 출산 과정이 평범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더믹 현상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며, 마카오는 생각보다 안전하다. 또, 타지에서 살게 된 것도 내 인생에서 내가 결정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출산을 잘 치르고 나면, 나는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극한의 고통과 극한의 공포 속에서 오롯이 견뎌낸 나 자신이 대단할 것 같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용기를 배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미래에 용기 있는 나에게, 조금은 기대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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