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더 많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이겠지만, 월급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상여금 지급이나, 복지라던가, 혜택 등 처우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항공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승무원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경우에 당연히 국내의 두 대형 항공사 혹은 외국계 오성 항공사를 목표로 준비를 할 것이다. 처음부터 목표를 중소 항공사로 잡은 사람은 흔치는 않겠지만 그럴만한 개인적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것이 본인의 선택이라면 그 또한 존중한다.
나는 중소기업 규모의 항공사에서 일을 했다. 물론 대형 항공사에서 나의 커리어를 시작했으면 좋았겠지만 기회를 잡지 못하였고, 일단 기회가 닿는 대로 중소기업에서 시작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여기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뒤, 대기업으로 이직을 할 계획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20대 초반, 중반에 커리어를 시작하는 일의 특성상 그리고 보통은 간절히 꿈을 꾸고 열정으로 이 직업을 선택한 사람이 대부분 이기에 기회만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돈은 벌어야 되고, 할 게 없어서 그냥 승무원이 된 사람은 못 봤다) 그리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저 기회를 준 회사라서 감사했고, 열심히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5년 가까이 승무원 바닥에서 몸을 담고 나와 이제야 할 수 있는 말은, 할 수 있으면 대기업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외국계 항공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국내의 사정은 정확히 모른다. 국내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이 글을 스킵하거나 참고만 하기 바란다.
1. 중소규모의 항공사는 투자를 안 한다.
회사마다 다를 수 있다. 작은 규모에서 시작하여 규모를 크게 크게 늘려 가는 항공사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경우는 탄탄한 모기업이 있다는 전제 하다. 모기업에서 빵빵하게 밀어주는 계열사 항공사라면 다른 이야기 이겠지만 내가 다닌 회사는 그렇지 않았다. 대기업은 투자를 비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들 수 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루트, 새로운 시장 개척으로 인한 수익이 생기므로 투자로 인해 발생하는 단기적 비용은 감내한다.
하지만 중소 항공사는 그럴만한 투자 비용도 없을뿐더러 비용을 줄이기에 급급하다. 그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 비행으로 이어지면 손님의 컴플레인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컴플레인은 고스란히 승무원에게 직격탄이 된다. 줄어드는 음료 가짓수, 저렴한 품질의 기내식, 부족한 기내 물품, 탑승구에서 브릿지를 사용하지 않음 등. 그리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승무원을 쥐어짠다.
처음 내가 이 회사에 들어갔을 때 물론 사전 조사를 하고 갔었다. 정보도 잘 없었지만, 찾아본 결과 그렇게 크지 않은 규모였다. 그래도 다른 항공사들처럼 점점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 아닌 기대를 하고 갔다. 입사 후 퇴사할 때까지 늘어난 레이오버 취항지는 없었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늘어난 취항지는 두어 군데 있었으나, 퀵 턴이었고 그나마도 잘 알지 못하는 중국 도시들이었다.
2. 비용을 줄이기 위해 승무원의 처우 개선은 맨 마지막이다.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승무원을 쥐어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승무원의 숫자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비행을 안 하고 그냥 집에서 대기하는 승무원의 수가 많을수록 회사는 그만큼의 기본급이 날아간다. 그래서 여유분의 승무원 수를 최대한으로 줄인다. 여분의 승무원은 항상 필요하다. 병가를 낼 수도 있고, 비행 지연으로 그 비행의 모든 승무원이 다음 비행을 운항하지 못할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 등.
그런데 승무원이 모자라다면? 6명이 해야 할 비행을 5명이 해야 하고, 5명이 해야 할 비행을 4명이 해야 한다. 일명 4 크루 오퍼레이션이라고 불리는 승무원 부족 현상은 내가 비행하는 내내 있었다. 단지 한 명이 줄었을 뿐이지만, 그 한 명이 해야 할 일을 나머지가 나누는 것은 많은 부담이다. 실로 나는 160여 명의 이코노미 손님들을 나와 크루 하나 총 두 명이 음료, 기내식 서비스까지 둘이서 담당해야 했다.
물론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고 비용을 줄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그것이 지나쳐 처우 개선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결국 승무원이 이탈하는 현상이 생긴다. 최소의 승무원만 유지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승무원 이탈 현상이 생기면 그만큼의 신입이 필요하다. 신입 트레이닝 센터는 이탈 현상으로 인해 쉬지 않고 돌아간다. 승무원이 넉넉할 때는 처우 개선을 위해 넉넉한 인원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윤이 생기지 않는 취항지를 캔슬해서 인원이 남는 경우였다.
3. 경력자를 방치한다.
싼 값에 승무원 인력을 써야 비용이 줄어드니, 상대적으로 비용이 더 드는 경력자를 굳이 데리고 있지 않아도 된다. 또한 경력자들과 신입의 월급의 차이가 거의 없다. 이런 경우,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경력자는 손해다. 경력에 대비해 월급이 오르는 대기업과 달리, 내가 다닌 회사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경력 승무원들은 대부분 처우가 더 나은 곳으로 이직을 하며 매년 엄청난 수의 이탈자가 발생했다. 물론 이탈의 이유가 경력자 방치 때문만은 아니었으나, 한몫했다고 본다.
경력자가 부족하다 보니, 경력자 대비 신입의 수가 너무 많았고, 많으면 한 달에 한번, 못해도 몇 달에 한 번씩은 새로 입사하는 신입들 때문에 비행 내내 손님 캐어하랴, 신입 캐어하랴 경력자는 더 힘들다. 그럼에도 경력자에 대한 보상은 없다. 모자라는 승무원에 신입 승무원 까지, 개선되지 않는 비행 환경에 악순환은 계속 반복된다.
어떤 회사가 유난히 신입 공고가 자주 난다면 이탈 현상이 큰 회사이다. 가뭄에 콩 나듯 공고가 나는 회사는 좋은 회사다.
4. 타이틀이 중소기업 출신
해외에서 계속 일을 할 것이라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한국으로 돌아가 이직을 해야 한다면 타이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의 능력을 낱낱이 보기엔 면접 시간은 부족하고, 이 경력을 나타낼 수 있는 어떤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니며 전문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가진건 네임 타이틀인데 당연히 어디서 들어본 대기업 타이틀이 유용하다. 대기업-대기업으로, 대기업-중소로 이직은 가능할 수 있지만 중소-대기업으로의 이직은 하늘이 보우하심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에 성공한 우리 회사 출신 승무원들이 꽤 있다. 끝없는 자기 계발이 중요한 이유다.
승무원이라는 꿈을 꾸면서 당장 입사할 회사 하나하나가 간절한 것은 사실이고, 나 또한 그 간절함을 알았기에 어떤 기회든 감사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내가 위에 언급한 내용을 미리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써내려 보았다.
하지만 내가 제목에 달아 놓았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나은 이유' 라는 명제는 반드시 참은 아니다. 분명 대기업에 힘들게 입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우리회사로 이직을 한 경우도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일에는 각각의 장 단점이 있기는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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