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이라는 직업은 힘들기도 했지만, 돌이켜 보면 참 매력 있는 직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1년 이상 승무원으로 근무했던 사람들은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안 맞는 사람들은 아닌데,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비행은 정말 중독인 것 같다. 쉴 만큼 푹 쉰 지금, 점점 엉덩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입사하고 대머리 독수리 같은 어설픈 그루밍을 하고 커다란 매뉴얼을 한 손에 이고 지고 트레이닝을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내가 바라고 바라던 그 모습, 깨끗한 정장에 승무원 그루밍을 하고 동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며 트레이닝을 받으러 가던 그때가 돌이켜 보면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된 것 같다.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하나씩 승무원에 대한 지식을 익혀나갈 때 신기한 부분들이 참 많았다. 일반적으로는 알 수 없는 지식들이니 얼마나 신기하던지 감탄을 연발하며 트레이닝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매일매일 진행되는 쪽지 시험에, 주말이면 위클리 시험, 그리고 승무원이 될 자격이 주어질 최종 시험 까지, 방대한 양을 머릿속에 그것도 영어로 꾸역꾸역 집어넣으니 정말 ‘뇌 용량이 딸린다’라는 느낌도 받았다. 너무 많은 새로운 정보들을 외우느라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재밌었다. 오늘은 그 트레이닝에서 내가 ‘신박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들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1.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비상시에 승무원들은 승객을 탈출시키기 위해 비상구를 열면 슬라이드가 터져 나오게 되어있다. 몇 초 안에 튜브가 팍! 하고 부풀듯이 터져 나와 손님을 탈출시킬 수 있는 미끄럼틀 같은 일명 ‘슬라이드’가 준비된다. 손님들은 이 슬라이드를 통해 빠르게 기내에서 밖으로 탈출을 하게 되어있다. 지상에서 비상탈출을 했다면 그렇게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와 혹시 모를 폭발에 대비해 비행기에서 멀리 뛰어가면 되지만, 만약 수면 위로 비상착륙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는 이 슬라이드가 임시 보트가 될 수도 있다. 슬라이드를 통해 사람들이 탈출을 하게 되면, 수면 위에서는 갈 데가 없으니 일단 슬라이드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을 것이다. 탈출이 완성되거나, 혹은 비행기가 가라앉을 때에는 비행기 기체와 연결되어 있는 이 슬라이드의 줄을 끊어 버린다. 임시 보트가 되어 버린 이 슬라이드는 줄을 끊음과 동시에 불도 들어온다. 그러면 슬라이 드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 손으로 힘껏 노를 저으며 비행기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고, 다른 슬라이드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여 탈출한 사람들을 한데 모은다.
긴급한 비상상황에서 어떻게 칼을 준비해서 슬라이드의 줄을 끊어버릴까? 승무원들은 칼을 챙겨서 나가야 할까? 정답은 슬라이드 줄 옆부분에 칼이 있는 부분이 있다. 그 칼을 이용해서 끊어 버리면 된다. 기내 안에서는 칼 같은 위험한 물품을 소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2.
만약 비행기가 아무도 없는 무인도라던가, 쉽게 구조를 받을 수 없는 곳에 비상착륙을 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에서 처럼 해변에 ‘HELP’를 써 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며 사냥을 가야 할까?
비행기 안에는 비행기의 위치를 위성으로 보낼 수 있는 'ELT'라는 물건이 있다. 비행기 기종마다 다르지만 보통 기내 안에 자동으로 비상 착륙 시에 위치 정보를 보내게 되어있는 것도 있고, 수동으로 직접 실행시켜야 하는 것도 있다. 요즘 기종에는 직접 실행을 시켜야 하는 ELT도 밑에 달려있는 버튼 하나로 지상 모드, 수면 모드(바다나 강에 비상착륙했을 때를 위해)를 조종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옛날 모델도 있다.
옛날 모델 같은 경우에는 지상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옆에 달려 있는 작은 봉지에 물을 담은 뒤 소금을 넣고, 그 안에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 잠겨야 실행시킬 수 있다. 그런데 사막 한가운데에서 비상착륙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실물을 넣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그래서 물을 대신할 수 있는 액체류를 넣게 된다. 트레이닝받을 때 어떤 액체류를 넣어야 하냐는 질문을 받아서... 고민 끝에 ‘눈물’이라고(하하하) 대답했었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다들 울고 있을 테니까. ‘피 땀 눈물’ 나오고 난리였지만, 정답은 ‘소변’이었다.
3.
수면 위에서 비상착륙을 하게 되면,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하는 것쯤은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기내에서는 이 구명조끼 말고도 여러 장비들이 준비되어있다. 갓난아기들 같은 경우에는 구명조끼를 입힐 수가 없으니, 아기들만을 위한 작은 보트도 있고, 어린아이들 용 구명조끼도 있다. 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에 여분의 보트도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릴 경우에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기내 안에서 흔히 보는 의자. 그 쿠션은 물에 뜰 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져 있다. 혹시 비상착륙 시 구명조끼도 못 챙기고, 다른 장비들도 차마 손 써볼 틈 없이 급박한 상황에서 탈출을 해야 했다면, 이 의자 쿠션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물론 구명조끼만 못하지만, 그래도 쿠션만 있다면 어느 정도 물에서 떠있을 수는 있다.
4.
기내 안에 있는 장비 중, 사막 한가운데나 무인도처럼 당장 구조를 기대할 수 없는 곳에 탈출을 하게 되면 승무원은 ‘서바이벌 키트’라는 물건을 챙겨 탈출을 하게 된다. 이 서바이벌 키트에는 정말 이것저것 생존에 필요한 다양한 물건들이 들어있다. 그중 내가 신박했다고 생각했던 아이템은 바로‘암모니아’ 다. 작은 병에 암모니아가 담겨 있는 건데, 냄새가 아주 지독하다. 이 암모니아를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서바이벌 키트에 들어있는 걸까?
암모니아는 그 강력한 향을 통해 의식을 잃은 사람을 깨울 때 사용한다. 의식이 없는 사람의 코 밑에 암모니아를 대면 자극이 되어 의식이 돌아올 수도 있다.
5.
수면으로 비상착륙을 하고 난 뒤에 탈출이 끝났다면, 하염없이 구조를 기다리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위치를 표시하는 여러 도구들이 있다. 그중 ‘Sea dye marker’라는 게 있는데, 바닷물에 넣으면 밝은 초록색깔의 염료가 번지면서 멀리서도 위치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구조대가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아이템들이 있는데, 사용법도 다르고 색깔도 다 달라서 시험 볼 때 참 헷갈렸다. 형광 초록, 밝은 빨강, 선명한 오렌지 이렇게 색깔이 구분되어 있어서 정확히 그 명칭을 외워야 했다. 지금도 안 까먹은 걸 보니 주입식 교육이 제대로 통하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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