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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s Fong Apr 24. 2020

기내에서 칼부림(?) 날뻔한 비행

  좁은 기내 안에서 비행을 하다 보면, 늘 그렇듯 예민해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200여 명 가까운 사람들이 기내 환기 시스템으로 걸러진 그다지 맑지 못한 같은 공기를 계속 마시며, 내 한 몸 겨우 쉴 만한 좁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옆에서 아기가 울거나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하는 손님들을 만나면 한 껏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기내에서는 이런 예민 해진 손님들이 승무원에게 화풀이를 하실 때도 있지만, 손님들끼리 싸움이 나는 경우도 비일 비재 하다. 특히 한번 화가 나면 체면 불구, 갈 때까지 가는 중국 사람들은 싸움이 나면 정말 살벌하게 싸운다.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무원으로서 싸움난 손님들을 말리다 보면, 혹시나 저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오진 않을지 가슴을 졸이게 된다. 싸움이 났을 때 남자 승무원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진정이 가능 하지만, 여자 승무원만 있다면 싸움을 말리는 데는 무리가 있다. 남자 승무원이 여자에 비해 많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남자 승무원은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 숫자를 늘리는 게 맞다고 본다.


  늘 그렇듯 중국으로 가는 비행이었다. 이륙을 무사히 마친 비행은 안정 고도에 들어섰고, 승무원들은 식사 서비스를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손님에게 식사를 준비해드리면서


   "손님 식사는 돼지고기를 곁들인 밥과 닭고기 국수가 있습니다. 어떤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테이블을 열어 주시겠습니까? 뒷 손님을 위해서 의자 등받이를 세워주시기 바랍니다"와 같은 늘 하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한 손님이 식사를 하면서 등받이 세우기를 거부했다.


   "손님, 뒤에 분이 식사하시기에 공간이 부족하니 등받이를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싫어"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 앞 손님의 의자 때문에 불편하게 식사를 하시는 손님의 일행분께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승무원이 등받이 올리라잖아!!"


   "싫다니까? 내 자린데 내 편한 대로 할 거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뭐라고 이 xx!! $%^&*(&^%$%^&"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 손님 진정하시고요, 식사를 다 하시고 나서 다시 등받이를 젖히고 쉬 실 수 있으니 지금은 잠시만 양해를 부탁드려요"


하지만 그 손님은 귓등으로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바로 그때, 화가 난 손님은 그 손님의 의자 등받이를 마치 권투 선수가 샌드백 치는 것처럼 아주 세게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야 이 xxx 올리라고! 올리라고!!! "


   "뭐야 이 xxx 미쳤나!!!"


욕과 의자 등받이를 치는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손님들은 멱살을 잡기 시작했고 손님 한분은 거의 다른 쪽 의자 위로 넘어갈 것처럼 심하게 몸싸움을 했다. 손님 둘을 떨어트려 보려 했으나, 한 낱 나약한 승무원이 짐승 같이 싸우는 중국인을 말릴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A 씨, 일단 내가 말리고 있을 테니까 빨리 사무장한테 보고 해 주세요"


나는 급한 대로 나와 같이 서비스를 하고 있던 주니어 승무원을 앞으로 보냈고 계속해서 몸싸움을 말려보려 노력했다. 잠시 후, 사무장이 *PM(Passenger Manifest-탑승 승객 명단)을 가지고 나타나서 손님의 이름을 찾은 뒤, 그 두 사람을 호명하며 말렸다.


   "XX 씨랑 XX 씨, 그만 하시죠? 자꾸 이런 식으로 하시면 저희 경찰 부릅니다!! 그만하세요!!"


중국인 사무장은 그 중국 특유의 말투로 두 손님을 어린아이 다루듯 달랬고, 싸움은 점점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결국 의자 등받이를 세우길 거부하던 손님은, 뒷 손님을 위해 등받이를 세웠지만 뒷 손님의 일행분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대며 앞 손님을 노려봤다.


   "너 내리면 보자. 너 죽여 버릴 거야!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라고!"


살기 어린 눈으로 욕지거리를 남발하는 손님의 손에는 기내 식사 서비스에서 나눠 주는 트레이에 포함이 돼있는 플라스틱 칼이 쥐어져 있었다.


   "손님... 칼 이리 주세요. 어서."


그 플라스틱 칼로 사람을 죽일 리는 만무했고, 조그만 플라스틱 칼을 쥐고 있는 그 손님이 웃기기도 했지만 결국 빼앗았다.



  비행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조용히 흘러갔고, 이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혹시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싸움이 날 수도 있었기에 우리는 손님 두 분을 멀리 떨어 뜨려 앉혀 놓았고, 폭력을 행사했던 손님을 마지막에 하기 하도록 조치했다. 그 손님은 어디서 다시 구했는지 플라스틱 칼을 Disembarkation(비행기에서 모든 손님이 하기 하는 시간) 내내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손님이 내리고, *Safety Check을 시작했다.


   *Safety Check : 손님이 모두 내리고 나면, 갤리와 화장실 기내 선반과 의자 밑 부분 등을 체크하며 손님들이 두고 내린 물건은 없는지, 의심될만한 물건은 없는지 체크하는 것


   마지막 손님이 내리고 간 자리에는 테이블이 열려 있었고, 플라스틱 칼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두 손님이 혹여 이미그레이션에서 마주쳤더라도  칼부림 사건은 나지 않았으리라.




#승무원 #외항사 #외항사승무원 #승무원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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