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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싶다 Sep 20. 2017

특별한 책 선물에 대한 그리움

    얼마전 있었던 독서모임에서 특별한 행사를 가졌다. 각자 읽었던 책들 중 추천하고픈 책을 포장해서 겉표지에 추천사를 쓰고, 다른 사람들의 책들을 돌아보면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서로 교환하는 행사였다. 나는 순서상 두 번째로 책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위트 있는 추천사들 가운데, 한 글귀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끔은 아주 뻔하고 사소한 말들이 크게 와 닿아 위로가 될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이 글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평소에 내가 이런 류의, 뻔하고 사소한 말로 위로를 전하는 책에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돈 주고 사야될 필요까지는 느끼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가끔씩 지나가면서 펼쳐보는 이런 책들에서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는 건 사실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책이기도 하고, 이 책을 읽었던 분은 어떤 위로를 받았기에 이런 추천사를 쓸 수 있었는지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을 선택했다.


    책의 원래 주인인 분의 말을 들어보니, 가끔 잠들기 전에 이 책을 읽어보았다고 했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 이 책을 읽으면 머릿 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면서, 주위 사람들 중 이런 책을 원하는 분들이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해 이 책을 선물로 골랐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딱 내게 필요한 책이었다고 생각했다. 오랫만에 받아본 좋은 책 선물이었다.


    사실 책은 참 어려운 선물이다. 지인들에게 몇 번인가 책을 선물한 적이 있었지만, 항상 선물한 보람을 느낀 건 아니었다. 이미 가지고 있다, 읽어봤다, 읽어봤는데 재미없더라 등등. 선물하는 입장에서 다소 맥이 풀리는 그런 반응들은 책 선물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게다가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 풍조 속에서 비용 대비 효용을 따졌을 때 책 이외의 대안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책을 마지막으로 선물한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하기 힘들게 됐다. 그리고 선물로 받은 지는 더 오래되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간 내가 해 왔던 책 선물들을 떠올려 봤다. 그러다 문득, 선물하는 입장에서 상대에게 더 좋은 선물을 하려는 고민이 부족했던 건 아니었을까를 새삼스럽게 되돌아 보게 됐다. 책 자체가 나쁜 선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선물이 상대에게 정말 적합한지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을 했었는가 스스로 물음을 던졌을 때 자신있는 대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 이유가 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내가 사람들에게 맞는 책을 골라줄 정도로 많은 책을 읽어보지를 못했다. 독서량이 부족하다보니 내가 읽어보지도 않은 책을,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사다가 선물해 준 적도 있었다. 마치 가보지도 않은 맛집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남에게 추천해 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선물을 받은 상대가 내게 역으로 이 책 읽어 봤었냐고 물어봤을 때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느꼈던 그 멋쩍음이란. 물론 내가 세상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는 일이긴 하지만서도, 좀더 많은 책을 읽어봤더라면 이 사람에게는 이 책이 어울리겠다고, 적어도 내 자신은 확신할 수 있는 그런 책을 선물해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이유로는, 내가 그 사람을 깊이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 사람을 평소에 좀더 잘 알고 있었더라면, 적어도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혹시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책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이며 다른 작품들 중 안 읽어본 건 없는지 미리 알아내는게 불가능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즉, 내가 그 사람을 내가 좀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독서량이 좀더 많았더라면, 그 사람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최고의 책을 선물해 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돌아본 후, 반대로 나는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던 책들을 떠올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책장에도 수많은 책들이 들어왔다 사라지고 했지만, 내게 특별한 책들은 무엇이었던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군 복무 당시 중대장에게 말씀드려서 진급 선물로 받았던 <극단의 형벌>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미국 연방검사였던 저자가, 사형제도가 집행되는 과정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그 불완전성과 비인간성에 대해 고발하며 결론적으로는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를 싣고 있는 논픽션인데, 솔직히 말해서 선물받지 않았다면 끝까지 읽지 않았을, 지루한 책이었다. 제대 후 이미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기억하는 건 앞장에 중대장이 적어준 메세지 때문이었다.


    그냥 책만 주셔도 됐을 것을 굳이 앞장에 글을 써 주시는 수고를 하신 것에도 그렇지만 그 메세지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은 여전히 남아 있다. 누구나 치열하게 사는 세상에서 성실함이 도무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 메세지가 큰 힘이 됨을 느낀다. 오랫만에 펼친 맨 앞장의 그 글귀를 읽으며 이제는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내게 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특별하다.


    


   문득,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담은 책을 선물하는게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단지 책장 앞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조그만 메세지를 적어 주는 사소한 행위만으로도 충분하다. 설령 선물받은 책이 내가 읽었던 책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이라면 오히려 기존의 책 대신에 메세지가 들어간 책을 책장에 채울 것이다. 그리고 내 책장 한켠에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그리고 책을 펼칠 때마다 항상 그 사람을 기억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추천사를 포장지에서 오려내어 책 앞장에 가져다 붙였다. 이로써 이 책도 내 책장에서,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한 권의 책이 되겠지 생각하며 책을 책장에 꽂았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건, 이 메세지가 나만을 위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메세지가 담긴 책을 선물받아 본지가 정말 오래 되었다는 걸 느꼈다.


     다시 한번 생각한다. 책은 정말 어려운 선물이다. 내 마음에 꼭 맞는 책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이는 앞으로 살면서 정말 드물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내게 책을 선물하면서, 진심 어린 메세지를 적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다면 인생책을 만난 것처럼 마음 속으로 정말 소중히 생각하고 싶다. 그 간절함만큼이나 특별한 책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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