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동물을 보호하는 일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변재원 작가

by 이윤지

최근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김정호, 어크로스>를 읽으며 청주동물원의 업무와 동물권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한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청주동물원의 동물들은 왜 이렇게 비실비실해 보일까?”, “사자가 왜 저렇게 말랐지?” 같은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현장의 현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외형만 보고 내린, 무지에서 비롯된 판단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책을 읽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우연히 SBS에서 김정호 수의사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방송에는 김정호 수의사뿐 아니라 변재원 수의사, 홍성현 수의사까지 세 명이 한 팀이 되어 청주동물원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나머지 두 수의사에게도 관심이 생겼고, 특히 변재원 수의사는 어떤 생각과 태도로 이 일을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변재원 수의사가 이미 몇 년 전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김영사>를 출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책을 바로 구매해 읽게 되었다.


변재원 수의사의 이력은 흔히 떠올리는 ‘동물원 수의사’의 경로와는 다소 달랐다. 수의학과를 졸업했음에도 공중방역 수의사가 아닌 현역병으로 복무했고, 연평도에서 ‘잠수의무특수과’에 지원해 잠수 훈련을 받았다.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 떼와 산호, 돌고래 떼를 마주한 경험은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그 순간 해양 동물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후 수의사 면허 취득 후 아쿠아리움 수의사로 경력을 시작했고, 당시 수의사와 사육사의 경계가 모호했던 환경 속에서 ‘수의사 업무를 할 수 있는 사육사’로 일하기도 했다. 일반 동물병원을 거쳐 결국 야생동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청주동물원에 자리 잡게 된 과정은, 이 책이 단순한 직업 소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선택과 신념의 기록임을 보여준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현장에서 겪어온 다양한 에피소드와 솔직한 감정을 담고 있다. 초보 수의사 시절, 의욕이 앞서 저질렀던 실수를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고백하며, 초보 수의사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좌절과 혼란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동시에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현재는 동물을 위해, 그리고 수의사 후배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실천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동물 치료와 건강관리뿐 아니라 행정 문서업무, 봉사활동, 후배 수의사들을 위한 자료 제작까지 그의 업무는 우리가 상상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책을 통해 동물원과 동물관리 제도의 미비함, 그리고 그 개선 속도가 여전히 매우 느리다는 현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동물은 무조건 야생에서 살아야 한다’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항상 정답은 아니라는 점도 인상 깊었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인공 포육으로 자란 동물들은 시멘트 바닥에 익숙하고, 오히려 흙바닥을 낯설고 두려워한다는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던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나는 평소 인권 문제에는 관심을 두고 목소리를 내왔지만, 동물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했다. 동물을 키워본 적도, 마음을 준 경험도 없다는 이유로 자신을 변명해왔다는 사실이 이제는 부끄럽게 느껴진다. 청주동물원의 두 수의사가 쓴 책을 통해 동물원은 단순히 건강하고 보기 좋은 동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치고 아픈 동물들이 야생으로 돌아가기 전 치료받고 훈련받으며 머무는 ‘과정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동물들 또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책 속에서 특히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 있다.


“유전 질환도 비슷하다. 나를 탄생시킨 존재가 남긴 흔적으로 인한 질환인데, 그저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살아가는 것이 내게 삶을 제공해 준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이런 기준은 수의사로서 내가 동물을 치료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물론 애초에 겪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병에 걸리거나 상처를 입거나 장애를 얻은 개체를 외면하거나 숨기지 않고 치료하고 보호하면서 그 친구가 살아온 이야기를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을 찾는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이고 알리는 일은 여러모로 필요하다.” 186p


-> 선천성 희귀 질환을 가진 두 자녀를 키우는 처지에서 이 문장은 큰 위로로 다가왔다. 이런 생각이 환아 부모만의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생명을 돌보는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깊은 공감과 따뜻함을 느꼈다.


“얼마 전 영구 장애를 입은 야생동물을 보호한다는 소식을 들은 장애인 관람객이 고맙다는 전화를 주었다. 열악한 개인 동물원의 나이 든 동물을 데려왔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노령층 분들이 응원 댓글을 달아주었다. 소외된 동물의 보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확장될 것이라 믿는다.” 220p


-> 한 분야에서의 작은 실천이 결국 더 많은 존재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나의 삶과 태도 또한 돌아보게 했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도 당장 눈앞의 결과에서 그치지 않고, 나비효과처럼 더 넓은 곳에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는 동물원에 관한 책이지만, 결국은 “존중받아야 할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시선은 분명 이전과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