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은 1990년대 초반 한국 출판계를 배경으로, 한 여성 편집자 ‘석주’의 삶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10대의 석주는 아버지가 사범대에 진학해서 교사가 되라고 권했을 때, 담임이 학력고사를 망친 그녀에게 사학과에 진학하여 교직을 이수하라고 제안했을 때, 군말 없이 따르던 소녀였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흐름에 맡겨 살아가던 석주가 대학에서 스스로 국문학과 조교와 교수를 찾아가 청강을 부탁한다. 졸업 후에도 임용시험을 치르지 않고, 문학과 책에 이끌려 편집자의 길을 선택한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몸으로 겪으며 점점 ‘일’과 ‘나 자신’의 의미를 찾아간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인 ‘오직 그녀의 것’은 결국 타인의 기대나 시대의 흐름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삶과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또 출간 과정에 관련된 직업군을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한 편집자의 일생이 담긴 이야기라 자연스럽게 몰입해서 읽게 됐다. 현실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마치 소설과 에세이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읽히는 느낌도 좋았다. 읽다 보니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잠시 90년대로 다녀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덮고 나서 계속 남는 질문은 하나였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뭘까?”
그래서 방향을 찾고 있는 10대, 20대, 30대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다. 등 떠밀려 하는 일보다, 비록 느릴지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게 결국 방향성과 꾸준함을 만들어준다는 메시지가 조용히 와 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오며 겪는 어떤 경험도 결국은 쓸모없는 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믿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밤에는 쪽글을 끄적거리던 반년 남짓한 그 시간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해서 그녀의 삶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듯했으나, 그녀가 자신을 알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그녀에게 가르쳐준 것은 당시에는 모호해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지는 방식으로 그녀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38p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예전에 제 사수가 그러더군요. 뭘 좋아한다는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더 좋아하고 많이 좋아할수록 마음 다칠 일이 많다고. 254p
그날, 석주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돌아보았다. 그것은 닮은꼴의 하루가 반복되는 진부한 이야기 같았다.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는 어떤 독자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먹먹함이 밀려왔다. 시시하고 평범한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삶이었다. 석주가 미약하게나마 감동을 느낀 건 쓰지 않은 것과 쓸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단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그 여정은 오직 석주에게 속한 것이었고 그녀만의 것이었다. 264p
떨림과 설렘, 서투름과 투박함, 선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마음.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도, 그만둘 수도 없는. 백지와 같은 자신의 삶에 높이와 깊이를 만들고 명암을 부여한 바로 그것. 이 일을 통해 그녀는 세상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남 몰래 갈망하던 성취와 성공을 어렴풋하게 경험했고, 타인과 자신을 사랑할 힘을 얻었다. 27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