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교수님의 세바시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인간다움'이란 말은 참으로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과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인간다움은 무엇이 있을까요? 커다란 궁금증을 안고 귀를 쫑긋하며 그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김기현 교수는 인간다움이란 '공감', '이성', '자유'의 3가지 가치를 축으로 해서 현실 속에서 구체화된다고 말합니다. 즉 "인간다움은 공감을 연료로 하고 이성을 엔진으로 하며 자유로써 규범을 구성하는 성품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감을 통해 나와 타인의 거리를 좁혀갑니다. 조금 더 적극적인 공감을 위해서는 적어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본 적이 있거나 비슷한 경험을 통해 훨씬 더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전 무척 힘든 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학교로 부임한 1년 차 때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특히나 위계가 엄격한 학교였기에 제 자신이 경계선에 밖에 놓인 힘없는 자로 여겨졌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주목받지 못하는 자가 되어 때로는 발언권 없는 자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학교에서 경험했던 그 일들을 계기로 한 가지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자는 결코 타인의 어려움을 통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감이라는 것도 내가 그 사람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최근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있습니다. 그 책에 따르면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것이기에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일말의 자세가 요구됩니다. 공감은 내가 인간으로서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마음이라 생각됩니다. 공감을 잘하기 위해서는 일단 잘 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경청이라는 또 다른 가치가 등장합니다. 잘 들음으로 인해 그 사람이 어디가 아픈지, 무엇 때문이 마음이 슬프고 힘든지,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 들어줌, 경청. 그것은 또 다른 공감의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인간이기에 타인을 향한 질투와 시기, 두려움이 있습니다. 나와 경쟁 관계에 놓인 그 누군가 나보다 앞서 간다면, 우리는 당연히 불안합니다. 또 그 타인이 미워집니다. 이런 원초적인 마음들은 인간이기에 너무도 당연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성이라는 논리적 사고 체계가 존재합니다. 말초적 감정들이 치솟아 올라올 때면 이성이라는 무기를 들어야 합니다. 이성을 통해 감정적으로 치닫지 않는 절제된 삶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인간다움의 마지막 보루는 바로 '자유로움'입니다. 우리에게는 인간이기에 그 무엇에도 속박당하지 않을 자유가 허락됩니다. 다만 내가 나의 꿈과 이상을 좇아 살아가듯 타인에게도 그 만의 자유로움을 인정해야 합니다. 타인의 자유를 내가 규제하거나 빼앗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살아가는 나는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갖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공감'. '이성', '자유'라는 단어를 제 마음속에 품어봅니다. 조금은 나은 인간으로 그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타인으로 남기를 고대하고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