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했는데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특히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퇴근과 함께 아이를 둘러메고 병원 다니기에 바빴다. 두 살 터울 남매를 키우며 여느 워킹맘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았다. 두 아이를 얼추 키웠다 싶었는데, 큰아이와 10살 터울, 둘째와 8살 터울의 막둥이가 생겼다. 다시 갓난쟁이를 키웠다. 늦둥이 셋째를 키우며 생명의 소중함과 아이가 주는 기쁨과 행복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행복한 만큼 내 삶은 피폐해지는 것만 같았다. 어두운 동굴에 갇힌 것처럼 우울하고 무력했다. 엄마이기에 책임감으로 버텼다. 그러던 사이 큰아이가 사춘기 청소년이 되었다.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잘 크던 큰 딸아이가 돌변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말대꾸하기 시작하더니 거침없이 날 선 말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엄마는 엄마도 아니야. 나한테 관심이나 있어? 나는 세상에서 혼자야.” 세상 날벼락같은 말들이 내 마음속에 박혔다. 그간 바쁜 중에도 딸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엄마의 바쁜 삶을 이해하리라 싶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반항기 가득 찬 아이와 끝이 나지 않는 말싸움을 했다. 또 어느 날은 내 분을 못 이겨 아이와 한판 대결을 시도한 날도 있었다. 남의 집 이야기로만 알았던 일들을 내가 겪을 줄이야.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갔다. 이 과정을 한 번도 족한데 앞으로도 둘째, 셋째, 두 번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어느 날이었다. 딸아이 학원을 알아봐야 하는데 막내를 맡길 데가 없고, 별수 없이 유모차를 끌고 길을 나섰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둘째도 집에 혼자 둘 수가 없어 한 손은 둘째 손을 잡았다. 세 아이를 이끌고 학원가를 뒤지고 다녔다. 집에 돌아오니 녹초가 되었다. 아이들 학교 공개수업과 학부모 상담에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냈다. 일하는 엄마여서 소홀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스스로는 만족했다. 엄마로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는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나와 딸아이는 평행선을 달리기 시작했다. 속상했다. 억울했다. ‘내가 얼마나 저한테 정성을 다했는데.’ 내 마음을 몰라주는 딸이 야속했다. 아이가 울며 소리치던 했던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엄마도 아니야.”
답답한 마음에 자녀 교육책을 떠들러 보았다. 전문가 강의 영상도 기웃거렸다. 공부가 필요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까.’ 사춘기 자녀를 둔 엄마로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아이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내 사랑과 관심이 더 필요했을 뿐이다. 두 살배기 막내에 온 신경을 쏟으면서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는 다 컸다고 생각한 내 착각이 잘못이었다. 딸아이는 다 큰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화수분처럼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고팠을 테니까.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썼다. “엄마가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 엄마는 예전에도 또 지금도 변함없이 너를 사랑한다.” 말해주었다. 작은 메모장을 샀다. 딸과 나의 비밀 노트를 만들었다. 평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쓰기로 했다. 좋았던 일부터 속상했던 일, 서운했던 일을 쓰기로 했다.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딸아이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아이도 내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는 것 같았다. 교환 일기를 통해 그동안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나도 아이의 일상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일들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학교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들 속에서 딸아이를 새롭게 알아갈 수 있었다.
새벽에 깨어 쓰는 감사 일기에 딸과의 일들을 적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대화해서 감사한 일부터 사소한 것들에 감사할 수 있었다. 또 아이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을 때도 존재만으로도 감사했다. 딸에게도 이 감사의 마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딸에게 조심스럽게 엄마랑 함께 감사 일기 써보는 것은 어떤지 물었다. 다행히 딸아이가 거부하지 않았다. 하루는 내가 쓰고 그다음 날은 딸이 썼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쓰기 시작한 감사 일기는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사소한 것에서부터 감사를 찾게 도와주었다. 딸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잘 커 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나조차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을 알려주었다. 딸아이에게 감사한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딸에게 감사한 일 100가지를 찾아 쓰고 그 글을 딸에게 보내주었다. 아이는 예상치 못한 내 글에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감사 일기를 쓰면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딸과 나와의 거리를 좁혀 준 것만은 분명했다. 바쁘게만 살 때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마음 또한 바쁘게 흘러가 버린다. 새벽에 깨어 조용히 감사 일기를 쓰다 보면 잠들어 있던 내 안의 소중한 것들이 다시 살아 움직인다.
아들과 딸이 중고등학생이 되더니 아침마다 잠 깨우는 일이 전쟁을 방불케 했다. 아이들도 나름의 고된 하루를 살기에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인정은 하지만 깨워서 학교에 보내야 하는 엄마 마음은 바싹 타들어 간다.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거나 불을 껐다 켰다 하거나 고함을 쳐야만 일어났다.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나서야 자의 반 타의 반 눈을 비벼가며 일어나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딸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침 7시 기상도 힘들어하던 아이가 새벽 기상을 시작한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새벽에 일어나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너 어쩐 일이야?”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좋아 보여서요. 저도 한 번 그렇게 해보려고요.”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의 말에 놀랐다. 물론 매일 새벽 기상을 해서 내가 바라는 모습을 항상 보여주지는 못했다. 중요한 것은 내 모습이 좋아 보여서 시작했다는 아이의 말이었다. 부모가 잔소리를 입에 달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것보다 ‘먼저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일을 계기로 아이들에게 달라지기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먼저 변화하고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책을 읽는 것도, 감사 일기를 쓰는 것도. 내가 새벽 기상을 시작한 후, 우리 가족의 아침 시계는 분명 예전보다 빨라졌다. 나도 아이들도 남편도 아침을 일찍 맞이한다. 당연히 아침 식사도 함께하는 날이 많아졌다. 간단한 샐러드와 달걀부침 정도지만 가족이 함께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이고 아이들의 우상인 손흥민 선수가 있다. 그의 많은 것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의 아버지 또한 아들만큼이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훌륭한 아들을 키워낸 아버지의 남다른 자녀 교육법 때문이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이 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보면 부모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솔선수범’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성장합니다. 절대 편해지려고 하지 말고 솔선수범하세요.” 슛을 하루 1,000개 찰 때 “아버지도 옆에서 똑같이 훈련하시니 멈출 수가 없었다.”라고 말한 손흥민 선수의 인터뷰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손웅정 감독은 어린 선수들에게 팔 굽혀 펴기를 시킬 때도 함께 한다고 한다. 상대방에게 변화를 요구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자식 교육을 넘어 일상생활에서도 똑같이 적용한 셈이다.
나와 아이들, 나와 우리 가족에 있어서도 내가 달라지니 아이들이 달라졌다.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에 마음고생할 때도 많다. 어느 새벽인가는 아이 걱정에 번뜩 잠이 깬 적도 여러 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차 한 잔을 마주하며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면 실마리가 풀리는 경험을 했다. 자녀 교육서도 기웃거려 보고 유명인의 자녀 교육 강의도 들었다. 때로는 아이에게 줄 편지를 끄적거리는 날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분명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문제, 자녀 교육의 문제에 있어서는 부모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바로 이것이 올바른 자녀 교육 비법이다. 나 역시 내 삶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내가 먼저 바뀌어야 아이도 바뀌었다. 삐딱한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기 전, 부모인 나를 먼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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