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여름. 주변 지인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뭐라고? 작가가 되었다고?’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데, 작가가 되었다는 말에 축하한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싸했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소위 천부적인 문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높은 장벽. 그 자체였다.
관심 밖이었던 글쓰기.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브런치를 뒤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글이 있었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재밌는 글도 있었다. 마지막 회까지 찾아 읽었다. 몇 편의 글을 읽고 급기야 ‘나도 써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욕심만 앞서서 세 편의 글을 후다닥 썼다. 브런치 서랍 속에 글을 넣어두고 바로 직진. 작가 신청을 했다. 기대했다. 당연히 떨어졌다. 지금 다시 그 글을 열어보니 웃음 밖에 안 나온다.
남들 한다기에 얼떨결에 대충 휘갈겨 쓴 글을 보내고 작가 신청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후 브런치라는 세상을 통해 나와 다른 수많은 사람의 존재와 그들의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늘 학교와 학생들 속에서 집과 학교를 오가며 살았다. 학교 밖, 담장 너머의 삶에는 다소 관심이 없었던 나였다. 뭔가 새로운 바람이 훅하니 내 얼굴을 스쳤다. 새롭게 내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독서라는 것도 시작했다. 교과서, 교사용 지도서, 몇 권의 교육 관련 책이 전부였던 내 독서 생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나에게 독서는 기쁨이고 또 숙제다. 바쁜 삶 속에 떠밀려 생각만큼 잘되지 않을 때가 허다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오래전 멈추었던 블로그를 다시 열어 글쓰기도 시작했다. 브런치는 여전히 나에게는 넘지 못할 벽이었다.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었을 때는 용감하기라도 했다. 한 번 데었던 경험 때문인지 다시 도전하기를 주저하게 되었다.
그해 23년 9월 어느 날, 달력을 넘겼다. ‘뭐야. 겨우 3장 남았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 해가 다 가기 전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때 내 머릿속에 '탁' 치고 올라왔던 생각 하나가 있었다. 바로 브런치 작가. ‘다시 해보자.’ 막상 재도전하려니 자신이 없었다. 두려웠다. 새벽마다 일어나 턱턱거리며 글을 썼지만 형편없었다. 잘 써지지 않았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단 한 문장이라도 쓴다는 생각으로 매달렸다. ‘하루 10분 만이라도 써 보자.’ 목표와 기대치를 확 낮추었다. 마음의 부담이 사라지니 글쓰기가 조금 쉬워졌다. 한 문장, 한 문단. 힘겹게 한 편의 글이 완성되었다. 몇 번의 퇴고를 했다. 신청 버튼을 눌렀다.
시간 날 때마다 합격 메일을 확인하려고 들락날락했다. 초조했다. 일주일이 흘렀다. 택시를 타고 출장 가는 길이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깍~~~"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밀린 카톡과 메시지들 사이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이 있었다. ‘나도 할 수 있구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이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오롯이 나만의 기쁨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 매일 글을 쓸 줄 알았다. 글쓰기는 처음, 그 절실했던 마음과는 달리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하루 1편은 고사하고 일주일에 단 한 편 쓰는 것도 실천하지 못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세상에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 다시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세 아이를 키우며 힘들었던 일, 교사로서 방황했던 일, 크고 작은 내 일상의 소소한 깨달음을 글로 남기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그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었다.
“살아보니, 인생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합니다. 절대 멈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때로는 조금 쉬엄쉬엄 갈 때도 있으니, 그 상황에 맞춰 그날그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교사로 살아가는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사랑을 전하는 교사가 최고의 교사입니다.”
나는 작지만, 나의 경험과 일상이 그리 작지만은 않음을 글을 쓰며 깨달았다. 나도 그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고 용기를 줄 수 있음을 알았다. 그 첫날의 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글쓰기도 독서도 내 삶도. 나는 이제 작가다. 작가의 삶은 교사의 삶과 닮아있다. 교사로서 내 삶이 교실과 유리될 수 없듯이 작가로 사는 삶도 글과 유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 새로운 출발선에 놓여있다. 설렌다. 오늘, 다시 이 첫 마음을 꽉 붙잡아 두고 싶다.
얼마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에세이』를 읽었다. 이 책은 하루키가 자신의 창작 철학과 소설가로 사는 삶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은 수필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작가로서의 어려움과 고뇌, 성공의 순간들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또 창작 과정에 대한 그만의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가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그러한 고민이 자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하기도 한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그의 새벽 기상 습관이었다.
그는 자신을 작가라고 인식하기 위해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고 했다. 그의 일상은 관찰에서 시작되는데, 그는 세상의 작은 섬세함에서 영감을 받아 그 순간의 감정을 소설에 담아낸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일상 속의 고립감이나 외로움을 자주 다루는 듯하다. 그가 삶에서 직접 경험한 진솔한 감정이기에 그의 글이 독자들에게 큰 공감과 위안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새벽부터 시작되는 작가 하루키의 삶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새벽 기상 습관은 그의 창작력과 생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오늘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든 것이다.
미국 꼬마 시인 매티 스테파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Even though the future seems far away, it is actually beginning right now.”, “미래는 멀리 보이지만 지금 시작된다.”라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궁금해한다. 그러나 미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에게 물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이다. 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잘 써지지 않는 글을 붙잡아 본다. 포기하지 않고 쓰려한다. 잘 써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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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3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