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기록하라.” 자신의 시간을 장악한 사람들은 공통으로 일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다산 정약용은 “기억은 사라지고 생각은 흐려진다. 그러니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라고 말했다. 기억이란, 적어두지 않으면 어느새 흩어져 버리고 마는 모래알 같은 존재이다. 실제로 그는 18년간의 유배 기간에 자신의 일상과 학문을 메모하고, 글로 남겨 기록화하였다. 그 덕분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그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 국내 1호 기록 학자이자 현 국가 기록 관리 제도의 틀을 만든 김익한 한국국가기록연구원장도 그의 책 『거인의 노트』에서 “비록 지금의 내가 난쟁이일지라도 매일의 기록이 쌓이면, 우리는 그 위에서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라 말했다. 일상에서 일어난 사건과 생각, 독서, 대화 등을 숨 쉬듯 기록하라고 권한다. 기록만 잘할 수 있다면 생활과 학업, 일, 관계가 좀 더 분명해지고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매일 뜨는 태양이고 매일 마주하는 오늘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항상 새롭다. 매일 똑같은 기록 일지라도 그 기록은 그날, 그 시간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기록이 된다. 새해 첫날, 다이어리를 교체하며 올해도 잘 살아 보겠노라고 굳은 다짐을 했다. 몇 자 끄적이며 새해 소망도 적었다. 지난해 다이어리를 훑어보았다. 몇 월인지 듬성듬성 비어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름 바쁜 시간을 보냈던 때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기록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바쁜데 시간 내어 적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오롯이 내 일에 매진했다고 생각했는데 계획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으니, 생각만큼 하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하루 기록이 없으니, 성찰과 반성도 없었다.
반면 다이어리에 그날 무엇을 했는지 빼곡히 적은 날도 있었다. 오늘 마무리 못 한 일들에 대한 기록, 그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것, 내일 보충해야 할 점들이 적혀있었다. 그때의 기록을 보니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날의 일들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일상을 기록하며 어제보다 나은 하루, 어제보다 발전한 나를 그렸던 것은 아닐까 싶다. 처음 생각한 만큼 해내지 못했어도, 기록을 통해 또 내일 내가 해야 할 일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기록은 또 다른 기록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적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알차게 쓸 수 있을까? 이 프로젝트는 어떤 시간에 해결할까? 그 일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결국 적재적소에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과 기록을 통해 하루를 알차게 쓸 수 있다.
내가 기록한 다이어리만 살펴봐도 나의 과거를 가늠할 수 있다. 기록은 흩어져 버렸을 나의 시간을 붙잡아 준다. 간혹 잊어버릴지라도 다시 찾아 기억하기 쉽게 돕는다. 기록을 잘해두면 성찰할 수 있다. 지난날 나의 잘못과 부족함을 잊지 않게 돕는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고 적어도 한 번 더 조심하게 된다. 기록은 하루를 잘 보내는 것은 물론이요, 내 기억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돕는다. 어찌 기록하지 않으랴?
‘기록’이란, 문제 해결 비법과 같은 지혜를 도출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지식을 연결하고 정리하는 도구다. 일단 기록하려면, 머릿속에서 기억을 끌어내 현재 상황에 맞는 나만의 의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전 1만 4,000쪽에 이르는 노트를 남겼다고 한다. 아이작 뉴턴도 수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그의 편지와 원고, 메모는 201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난중일기』를 쓴 이순신 장군은 대표적인 ‘기록형 전략가’로, 임진왜란이 발생한 1592년부터 2차 전쟁이 끝나는 1598년까지 7년간 매일 일상, 일, 대화 등을 세세하게 기록했다. 이순신 장군이 불굴의 의지로 난관을 극복해 가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까닭은 모든 것을 일기 형태로 기록하며 자신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경영했던 ‘기록하는 습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일상에서 기록을 꾸준히 실천하면 좋다는 건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국내 1호 기록 학자 김익한은 그의 책 『거인의 노트』에서 “일상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려면 자신을 부감(俯瞰) 하듯이 들여다봐야 한다.”라며 일상을 적기에 앞서, 타자의 관점에서 나의 하루를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조금 부끄럽더라도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해 보면 시야를 넓히고, 객관적인 시선을 갖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록은 크게 이야기의 내용을 적는 ‘서사 기록’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진행 상황을 포착하는 ‘장면 기록’으로 나뉘는데, 책에서 기록 습관을 들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은 ‘장면 기록’이다. 시간대별 일과를 있는 그대로 옮겨 적어 보는 것이다. 시간 효율을 위해 육하원칙에 따라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고 ‘몇 시: 책 읽기, 몇 시: 유튜브 시청, 몇 시: 오전 회의’와 같이 키워드만 짧게 써도 된다. 그 당시 자신의 감정 표현을 간단하게 덧붙인다면 더 충실한 기록이 된다.
기록의 소중함을 깨닫고부터 새벽 기상 인증 기록을 매일 남기고 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자마자 바깥 풍경을 찍고 사진과 함께 새벽을 맞이하는 나의 확언을 써서 블로그에 올린다. “카르페디엠, 오늘, 이 순간을 산다. 쉽지 않은 선택을 한다.” 매일 새벽 기상을 기록하다 보니 어느 날은 정말 일어나기 싫고 힘든 날이었는데 인증 기록을 해야 해서 일어난 날도 있다. 기록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블로그를 시작하며 기록의 소중함을 느꼈던 때가 있다. 내가 쓴 글을 1년 전 글, 2년 전 글을 자동으로 불러올 때이다. 블로그의 이 기능은 매번 나에게 기록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과거 내가 썼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날 있었던 일, 그날 내 생각, 느낌을 기록해 둔 것이 무척이나 흐뭇했다. 기록해 두지 않았다면 먼 기억 속으로 흩어져 버렸을 텐데. 기록으로 남겼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날의 글을 읽노라면 과거의 내가 신통방통하기도 하고 어느 땐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의 기록을 통해 내 모습을 발판 삼아 더 나은 방향으로 계획하고 노력할 수 있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키케로는 “과거에 어떤 일이 이루어졌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항상 어린아이처럼 지내는 셈이다. 과거의 노력을 무시한다면 세계는 늘 지식의 유아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했다. 키케로 역시 지난날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통해 오늘과 미래가 있음을 강조한 셈이다. 기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 준다. 오늘을 살며 내일을 기억하고 다가올 미래를 계획하게 해 주는 가장 확실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기록인 셈이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늘 오전에 내가 한 일은 무엇인가?
오늘 퇴근하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기록해 보자. 다시 오지 않을 나의 하루가 맥없이 흘러가지 않도록.
#새벽기상
#미라클모닝
#새벽3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