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두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나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꽤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연결매출로 하면 5조 규모가 넘는 글로벌 도료 회사에서, 중방식 B2B 기술영업을 맡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플랜트 업계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편이었고, 고객들도 대부분 굵직한 국내 대기업들이었다.
업무는 험난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기술적 배경이 있는 선배들 틈에서, 문과 출신으로서 꽤 선방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좋은 동료들. 좋은 고객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계획서를 만들고, 견적을 제시하고, 때로는 입찰 PT까지.
조금씩 결과를 내기 시작했고, 매출 그래프도 눈에 띄게 올랐다.
대내외 관계자에게도 인정받았고, 조기승진도 했고, 올해의 사원상도 받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성과가 날수록 나는 점점 지쳐갔다.
고객 대응, 일정 관리, 내부 커뮤니케이션, 출장, 응대, 보고.
모든 게 루틴화되어 있었지만, 어디에도 ‘내가 원하는 것’은 없었다.
가족과의 시간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고 매일 되묻게 됐다.
'이걸 10년, 20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매일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였던 부장님과 본부장님의 모습.
그리고 회사를 나가 대리점을 차린 사장님들.
그 모습들이 어쩐지 내 끝자락과 겹쳐 보였다.
그게 결정적이었다.
나는 사표를 냈다.
“앞으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만둡니다.”
사람들은 물었다.
“다음 계획은?”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장사하려고요. 직접 공간 하나 차려보려구요.”
그렇게 나는 31살이 되던 해, 사업가가 되었다.
정확히는 ‘사장이 된 프리터족’이었다.
낮에는 칵테일이나 목테일 강의를 하고, 밤에는 하이볼을 팔았다.
공간을 꾸미고, 테이블을 닦고, 음악을 깔고, 손님을 맞았다.
처음 몇 달은 모든 게 새로웠고, 살아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나는 점점 조용해졌다.
매출은 버틸 만했지만, 커리어는 멈춰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는 한 골목 안에 갇힌 느낌이었다.
문득, 문과 출신으로 기술영업을 했던 ‘이전의 내’가 그리워졌다.
무언가를 설득하고, 프로젝트를 움직이고, 결과를 만들어내던 그 시간들.
그건 내 인생의 일부였는데, 나는 너무 쉽게 내려놓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문과 출신으로도, 커리어를 새로 짤 수 있을까?’
이 고민이, 내 인생의 다음 챕터를 여는 서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