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1 사직서 제출하기
그런데 부장님도 사직서를 냈다?!
만으로 3, 6, 9년마다 찾아오는 퇴사위기가 내게도 찾아왔다. 와이프와도 얘기가 잘 돼서 본격적으로 우리만의 사업를 하기로 결정하자, 어느덧 사직서를 내야했다.
설 연휴부터 취업규칙에 나온 퇴사규정을 다시 읽어보고, 2월에 근무를 마무리하고 싶으면, 30일전인 1월 중에 통보를 해야했다. 인수인계도 깔끔하게 뒷탈없이 해주고 싶었고 내가 떠나고 나서도 "일 잘하는 친구였지" 할 정도로 마무리도 완벽하게 하고 떠나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직서 양식을 열어보니, 퇴사하는 날짜를 통보하게끔 되어있었고, 2월 25일에 나갈지, 26일에 나갈지, 27일에 나갈지 썼다 지웠다를 정말 여러 번 반복했다.
결국 1월 27일로..!!
물론 작년 12월부터 퇴사하고자 마음먹었지만 성과금이나 인센티브가 아쉬워 언제 들어오나 매일같이 통장만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딱 설날을 하루 앞두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숫자가 통장에 찍혔다.
때가 되었다.
바로 그 전날인 1월 26일에도 사직서 낼 타이밍을 못잡고 그날 저녁에 또 사직서 날짜를 27일로 고쳤다. 오늘은 꼭 말해야지 하면서 아침내내 미팅이 지나가고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나니,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말하자, 싶어 부장님을 찾았지만 자리에 없었다. 화장실이나 가야지 하던 찰나 저 멀리 접견실에서 혼자 통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안그래도 단둘이 있을 공간을 찾고 있었는데 접견실에 있는 모습을 보니, 기회는 이때다 싶어 어슬렁어슬렁 그 앞을 서성였다.
"왜 무슨 할 말 있나?"
한참 후 통화를 마치고 나온 부장님이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듯 말끝을 흐린다. 이게 연륜인걸까. 쎄한 느낌이 있나보다.
"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잠시 시간 좀..."
"(웃으며) 왜! 뭔데?"
"그... 항상 부장님에겐 감사하고 있고, 3년동안 회사생활하면서 배운 것도 많은 듯 합니다. 회사에서 앞으로도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지만, 회사에 남아서 할 수 있는 게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를 거 같아서요 (결재판을 보여드리며...) 이거..!
회사에서는 1년차에 10억, 2년차에 30억, 3년차에 40억을 하면서 남들이 잘 안가고 기피하는 곳에서 매출을 해오고 있었고 회사야 어떻게든 공백을 메꿔서 돌아가겠지만 단기적으로 타격이 적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영업사원 한명한명이 정말 귀했지만, 그에 따른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껴 사직을 생각한 게 가장 컸다.
부장님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래서 나가서 뭐할건지, 계획은 있는지 물으셨다. 생각하고 있는 계획들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을 드렸다. 부장님 역시 내가 가지고 있는 현 상황에 공감했고, 빨리 비전을 찾아 나가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며 사표는 일요일에 영업이사와 결혼식을 가면서 제출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반전은 1월 2일에 부장님은 이미 사직서를 냈더라..?! 자기는 3월까지 하기로 했다더라. 우리팀은 전체영업팀 매출의 50%를 책임지고 있었지만 사내정치에 약해 부장님을 비롯해 그만한 대우를 못받고 있었고, 5살어린 영업이사에게도 쪼임을 당하는 걸 참고참다가 드디어 사직서를 냈던 거였다.
어쩌다보니 3명인 팀에서 팀장과 바로 직속부하가 같이 퇴사하여 팀이 사라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