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3 인사팀 퇴사면담
진실 / 제출하지 못한 퇴사면담 자료
"퇴사 면담은 언제 합니까?"
퇴사규칙을 보면 퇴사 전 퇴사면담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퇴사면담에는 어떤 이유로 퇴사하는지를 포함해서 향후 직장문화 개선을 위해 직장만족도 등을 조사하는 양식이 있었다. 문항은 총 8가지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회사 사직 이유
다니던 회사는 영업직에 인센티브가 별도로 없었고, 해당 부분에 대한 불만을 반영하여 몇가지 항목을 만들어 달성기준을 충족하면 점수를 주고, 점수에 따른 추가보상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다만 그마저도, 10점만점에 3점은 무조건 supporter라는 명목으로 매니저나 기여도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과 나눠야 했다.
상부상조한다는 의미에서 받는 사람은 좋을 순 있으나, 연차가 낮은 Junior level이나 대리과장급에서는 고생은 혼자 해놓고 보상은 나눠먹는 희한한 결과를 초래했다.
심지어는 육아휴직을 다녀와 실제 근무는 3개월 정도밖에 하지 않은 동료도 supporter라는 명목과 본부장의 총애를 업고 실제 1년 내내 고생한 사람들보다 몫을 더 받아가기도 했다.
노력한 사람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무임승차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회사에서 큰 기대는 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퇴사를 앞당겼다.
2. 직무 관련
기술영업직무를 하는 동안 다행히 자율성을 크게 인정해주는 팀장님을 통해 굉장히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장점이 부서 간 이기주의로 많이 상쇄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3. 보상 관련
불공정한 보상체계는 곧 만족스럽지 못한 보상을 의미했다. 객관적인 KPI뿐 아니라, 회사 역사상 다른 부서원들이 하지 못한 수주(프로젝트 전체 독점공급 계약)를 하더라도 그에 따른 보상은 잘했다라는 말 뿐이었다.
회사가 내미는 카드는 연봉 몇% 더 올려준다는 데 불과했고, 회사에 가져다 준 명예와 실적에 훨씬 못미치는 보상이었다.
면접 때는 회사가 지원자를 골라내지만,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해당 인력을 끌어안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각종 복지와 인센티브, 젊은 사내문화와 같은 내용들이 인력에게 보내는 매력포인트가 되지만 이러한 포인트들이 매력을 잃게 되면 지원자였던 인력을 떠날 궁리만 하게 된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차부장급보다는 비교적 연차가 짧고 적당한 이력을 가지고 이직하기 쉬운 대리과장급은 더 매력적인 회사를 찾을 수 밖에 없다.
4. 역량 개발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업무관련 받은 교육은 1개월에 걸친 OJT가 마지막이었다. 중간에 영업직 교육이 있긴 했으나 그저 회사문화홍보의 다른 형식에 불과했다.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 교육을 몇번 요청했으나 자금사정으로 반려되었고 개인적으로 시간을 쪼개 관련서적을 사서 읽거나 각종 규격을 구글링을 통해 익혀나갈 수 밖에 없었다.
5. 부서 관련
다행히도 자리만 지키려고 급급한 본부장을 제외하고 다른 팀원들은 각자 맡은 일에 열심히였다. 간혹 보이는 부서 이기주의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으나 그저 일이 귀찮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절차를 내밀기 전까지는 해주지 않는 경우는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다 회사의 이익증진을 위한 일이지 누구를 괴롭히고자 요청하는 게 아닌데 여느 부서나 영업직은 거짓말쟁이라는 낙인을 찍고 싶어했다. 그래서 최대한 고객이 내민 객관적 자료와 분석을 통해 도출한 결과를 가지고 타 부서와 얘기해야했고, 가정은 최대한 자제했다.
6. 회사 문화 관련
6번 사항과 마찬가지로 모든 부서가 다 이기적으로 굴진 않았다. 관계가 좋은 타 부서원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요청사항을 봐주기도 했으나 열에 아홉은 절차를 내밀기 전까지는 잘 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아쉬운 점은 이미 상급자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Junior의 도전이나 생각에 대해 이유없는 반대를 하기보다는 지나간 과거의 기록들을 보여주면서 대화흘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과거의 기록도 찾기 귀찮다는 이유로 직접가서 요청하기 전까지는 메일이나 전화상으로는 안해주는 경우도 많아서 아쉬울 뿐이었다.
7. 부서 매니저 관련
영업을 25년 이상 했던 부장님은 인간관계유지에 대해서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포인트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고 있었는데, 가령 고객사와 회식을 마치고 베스킨라빈스31 아이스크림을 가족들에게 가져가라고 꼭 사주곤 했다.
그 아이스크림을 가져간 고객은 우리회사에서 사준거라며 와이프에게 자랑을 할 테고, 자식이 있다면 분명 늦게 들어왔지만 아이스크림을 사온 아버지를 반겼으리라.
부장님은 단순히 고객 한 사람이 아닌 고객의 가족까지 생각했고, 해당 고객이 전하길 다른 회사사람들과 만난다고 하면 와이프가 극구 반대하는데, 우리와 만날때면 흔쾌히(?) 다녀오라고 한단다.
이처럼 부장님 밑에서 고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태도나 행동을 많이 보고 배웠다. 모든 점을 따라할 순 없어도 내 영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다만 너무 워커홀릭인지라 오히려 본인 가족들에게는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셨는데, 어느 날 산책하다가 영업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점을 말씀하셨다.
"젊었을 적에는 평일 내내 전국 각지를 돌다가 주말에 집에 들어가곤 했지. 너무 피곤해서 자고 있으면 딸내미들이 배 위로 뛰어들면서 놀아달라고 했는데 피곤해서 놀아주진 못했어. 애들이 금방 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고등학생이 되서 아빠가 집에 오면 본체만체 한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가족들이랑 시간을 못보낸 게 아쉽긴 하지."
부장님의 젊었을 적 노력이 있었기에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회사규모가 커진 것도 있지만 그 기회비용으로 가족과의 좋은 유대관계를 잃은 듯 했다. 나는 같은 상황에서 가족이 더 소중했기에 회사보다는 가족을 택하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8. 회사 내부적으로 전반적인 사항
내가 3년간 몸담았던 회사는 전형적인 중견기업의 모습이었다. 대기업이 되기엔 시스템이 모자라고, 중소기업이라거 하기엔 규모가 컸다. 아쉽게도 변화하고 발전하려는 시스템의 한 축이 되기에는 너무 시간과 비용 소비가 컸고,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이 퇴사면담자료를 제출하고 왔어야하지만 누구도 제출하라고 하지 않더라. 심지어 면담을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런 건 없더라. 그래도 많이 다져놓은 관계들이 아쉽고, 3년을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게 아쉬워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