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내가 머문 그곳.

by 이안 문과PM

D-day 퇴사당일.


오전 9시.


이미 퇴사한다고 얘기를 해둔지 꽤 되었기에, 마주치기가 무섭게 다들 인사를 건냈다.


"오늘까지가?"

"고생많았다~"


퇴사당일에 팀원들 뿐만 아니라 본부장까지 전부 바로 외근을 나가는 바람에 본사에 남은 같은팀이 아무도 없었다. 영업인들이 다들 바쁜 건 알고 있고, 나 역시 누군가 퇴사를 하더라도 고객이 불러서 외근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였다면 분명 인사도 못건넸을 게 분명한데도 영업팀에서 아무도 없다는 게 괜시리 느낌이 좋진 않았다.


오전 10시.


노트북 반납하기 전 마지막 책상의 모습.


그래도 퇴사당일 아침부터 자료를 보내달라던 고객이 있어서, 노트북을 반납하기 전까지 해당 자료를 정리했다. 지나가던 타팀의 팀장님들은 아직까지 뭐하러 일하냐면서 언능 노트북 반납하고 일찍 나가라며 부추겼다.


"이거만 마저 하고 반납하려구요~"

"대~충하고 언능 들어가~"


대충하고 언능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내 뒤에 올 사람에게 내 고객이 싫은소리하게끔 두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자료는 오전 10시 언저리까지 마무리하고, 노트북을 반납했다. 30GB가 넘는 자료들을 넘기고 나니 섭섭하기보다는 너무나 홀가분했다. 자료의 늪에 갇혀서, 고객들의 전화가 밤 8시에 오든지 9시에 오든지 전전긍긍 받아야 했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더 이상 시간압박에 시달리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11시.


노트북을 반납하고 나오는 길에, 가장 가까이 있던 인사팀에 들러 인사를 하고, 퇴직금 수령일에 대해 확인했다. 퇴사 후 14일 이내에 입금될거라고 하더라. 입사과정은 장장 1개월이 넘도록 진행되었는데, 정작 퇴사는 하루이틀이면 모든 게 정리가 된다는 사실이 새삼 회사생활의 끝도 별 게 없구나 싶었다.


많이 도움을 받았던 물류팀/생산팀/QC팀/기술팀을 돌아다니며 '저 이제 갑니다' 라며 인사를 마쳤다. 다들 회사에 대한 불만은 한가득이지만 이미 몸도 마음도 적응되어 버린 회사를 떠날 용기는 없다며 잘되라는 격려를 많이 받았다.


정리가 끝난 텅 빈 책상. 시원섭섭하기보단 홀가분한.


총무팀에 들러, 차량키를 반납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나니 이제 정말 가방 하나만 들고 나가면 될 정도로 정리를 마쳤다. 다행히 다른 영업팀 소속의 부장님 한 분이 배웅해주겠다며 따라 나오셨고, 덩달아 밖에서 외근에서 복귀하던 영업팀 두 분이 같이 배웅을 해주었다.


오전 11시 55분


차량을 반납했기에 와이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날 태우러 왔고, 12시가 되기 전에 회사를 나왔다.


3년에 걸친 회사생활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이후 4월이 된 지금까지도 영업팀 및 고객들에게서는 연락이 오지만 이제는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내 선에서 대답해 줄 수 있는 부분만 답해주고 팀원들에게 연결시켜주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내게 물어보는 게 편하다고 물어보는 담당자도 몇분 계시는데, 감사하면서도 해드릴 게 없어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내가 머물던 장소, 내가 3년간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회사인만큼 내가 나오고도 고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성장하길 바란다. 이제는 날 지켜줄 회사라는 버팀목도, 팀장님도 없이 홀로 망망대해를 헤쳐나가야 한다. 사랑하는 와이프와 딸내미가 있으니, 잘 버틸 수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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