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 퇴사했는데 회식에 오라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다음주에 Global Director 가 오는데 송별회 겸해서 회식하는데 와 줄 수 있겠나?"
제가요?
D-1 퇴사 하루 전날.
본부장이 송별회 일정을 미처 못잡아서 미안하다고 하며 넌지시 던진 질문이었다. 사실 본부장이 평소에도 팀원들을 챙기고 아끼는 분이였다면 못이기는 척 친했던 팀원들을 보러가는 김에 인사차 들러 인사라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평소에도 직원들을 소모품처럼 이용하던 본부장이 제시를 하자 또 '나를 어떻게 이용하려고..?'라는 생각이 앞섰다.
대표적으로 회사생활에서 본부장에 대한 신뢰가 깨진 건 1년 전 쯤이었다. 새로이 기획전략팀으로 부서이동을 한 A라는 경력직원이 있었다. 자주 뵌 분은 아니지만 부서이동 전부터 책임감 있게 일을 잘한다며 소문이 자자했던 분이었다.
새로와서 처음 주어진 업무는 신규 비즈니스에 대해 여태껏 이뤄진 조사를 바탕으로 간략한 영업전략을 발표하는 일이었다. (영업팀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본부장이 요청했던 일이라 기억한다)
해당 발표는 내부발표가 아닌 Global Group 사에 Decision-maker들이 참여하는 꽤나 중요한 자리였는데, 처음 본부장의 의도는 새로 온 Freshman에게 좋은 기회를 부여하려는 듯 보였다.
발표를 며칠 앞두고 내부회의 중에 리허설이 있었는데 내용이 너무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본부장이 직접 지시하여 내용을 바꾸게 되었다.
발표당일, 본부장이 바꾸라던 부분에서 Global Decision-maker 들이 코멘트를 했는데, 현재 하려는 비즈니스와는 결이 좀 맞지 않냐는 반문이었다. 당연히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본부장이 나서서 해당 부분은 자기가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서 기재하게 한 내용이라고 보충설명을 할 줄 알았다. 웬 걸. 갑자기 발표하던 A에게 화를 내며 누가 자료를 이렇게 결이 맞지 않게 준비했냐고 공격을 하더라. 그 때 어이도 없고 너무 당황한 A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본인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팀원들을 희생시키는 본부장의 모습은 '내가 이 회사에서 우리팀 Head를 믿을 일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부분이었다.
결국 A는 보직변경 후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를 하셨다.
사실 이번 회식에서도 본부장의 의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누가봐도 A의 퇴사, 우리팀에서 나와 팀장님의 퇴사, 우리팀에 있던 B의 보직변경(영업팀에서 타팀으로 보직변경해서 영업팀을 벗어났다)까지 본부장의 리더십이 의심되는 결과물들이 많이 보였다.
본부장은 이 기회에 내가 자기 때문에 나간 게 아닌 듯 포장하며 여전히 잘 지내고 있음을, 리더십에 문제가 없음을 암시하기 위해 날 이용하고 싶어했음이 분명했다. (표면적으로는 본부장 때문에 나가진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회사에 비전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 데는 본부장의 몫이 가장 컸다)
실무를 해보지도 않았고 필드도 잘 모르지만 몇십년을 구른 팀장들을 신뢰하지 않았고, 팀원들을 부속품처럼 이용했으며 (이용하더라도 부속품이 부속품인지 모르게 당근을 줄 생각을 못하더라) 편파적인 상벌은 이 회사에 오래 근속해도 긍정적인 변화를 보진 못하겠다라는 확신을 주었다. 다행히 반대급부로 리더의 경영철학이 팀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준다는 부분도 인지했다.
D+7 회식당일.
정말 내가 오길 바랐으면 본부장이 직접 연락오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침일찍, 팀 막내한테서 카톡이 왔다.
이 날 하루, 연락 온 전부였다
장소전달과 회식참석 요청. 끝.
정말 송별회를 못해줘서 미안했다면, 정말 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었다면, 팀 막내에게 전달해서 카톡하나 보내고 끝내진 않았으리라.
그저 나도 본부장에겐 소모품에 불과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였고,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리고 덕분에 인력관리 및 개발에 관심이 없는 조직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만큼 내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으니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나 시도를 적극적으로 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족했던 시도와 노력에 대해서는 마지막글이 될 다음 글에서 적어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