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에피소드에 나온 부부들보다 훨씬 멀쩡해 보였는데도 가장 심각한 상태인 부부라고 오은영 박사가 일침을 놓았다. 아내는 남편에게 매우 의존적이고 그런 의존적인 면을 너무 허용해 주는 점이 문제인 부부였다.
같이 티비를 보던 아내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한숨을 하도 쉬어서 많이 바꼈는데, 그치?"
"(헉!)"
나도 안다. 결혼 전에는 아내를 좋다고 졸졸 따라다니면서 빵야~ 죽으라면 죽는시늉을 하며 너그럽게 장난칠 정도로 굉장히 허용적이었다. 당시 아내는 그런 내게 이것도 해주라 저것도 해주라 하면서 의존적인 면모를 보였고 그렇게 의존하는 부분을 충족시켜 주면 나만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잘해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이 간사하게도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제는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아도 어딜가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혹자는 이러한 안도감을 '안정감'이라고 부를 테고, 가정을 가져야 사람이 안정감이 생긴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도 이런 의미로 뱉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내게도 이런 안정감을 빙자한 안도감이 찾아왔고, 함께 찾아온 사랑스러운 딸에게 애정을 쏟기 시작하면서 아내에게 조금씩 소홀해졌다. 애기가 응애~ 하려고만 해도 가서 "오구오구 배가 고파요~ 맘마 가져올게요"를 일삼았지만 아내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냉장고에 반찬 해둔 거 꺼내먹어~"를 일삼았다. 이게 더 심해져서 나중에는 한숨을 팍팍 쉬면서 지금 애기 보고 있는 거 안 보이냐~ 밥은 혼자 차려먹을 수 있지 않냐~ 를 차곡차곡 뱉어내던 내 모습이 떠올라 굉장히 민망했다.
평소 같았으면 "배가 고프다고?! 내가 얼른 차려줄게"하며 부리나케 부엌으로 뛰어가던 내 모습에 익숙해져 있던 아내에게 '너 이 자식 결혼하고 나면 변한다더니 남자들은 정말 다 똑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을게 분명했다. 이렇게 말을 뱉은 나조차도 아차 싶었는데 그 말을 직접 들은 당사자는 얼마나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을지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래도 난 여보랑 이런 프로그램 가끔 보는 게 좋더라. 내가 얼마나 여보한테 소홀했었는지 반성하게 돼..."
넌지시 말을 뱉어보았다.
"어휴 그래 반성할 정신머리는 아직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요새는 반성이 좀 됐는지 옛날 모습이 재생이 좀 되는 거 같긴 하더라. 그래도 아직 재생 중이야!"
결혼 전에는 아내가 내게만 이거 저거 부탁하고 아이처럼 의존적인 모습을 보였던 게 전혀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부분이 아내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일을 하고 집에 와서 마치 아이 둘을 봐야 하는 것처럼 느끼면서 아내는 다 큰 성인인데 내가 언제까지 챙겨야 하나 라는 생각을 많이 가졌었다. 하지만 결혼하기 전에는 분명 뻔한 거짓말처럼 "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게!"라고 외치던 나였는데, 이제는 손에 물 좀 묻힐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건 분명 내 잘못이다.
현실이 바뀌지 않았냐? 아이도 태어났잖아?
하지만 다 떠나서 내 말을 절반은 믿고(?) 결혼했을 아내에게 내가 뱉은 말을 지키지 못한 꼴이다. 남들이 뭐라든지 우리 부부 사이에 약속한 일을 나는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이런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다시금 생각이 든다. 비록 또 금세 까먹고 되돌아가겠지만, '오늘도 아내에게 열심히 잘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