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본능

심행_에세이

by 심행

9년간 쉼 없이 바쁘게 달려왔던 내가, 휴식을 통해 비워내자 다시 달리고 싶은 본능이 깨어났다. “채우려면 비워야 한다”는 말이 사실임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쉼의 시작은 낯설었지만, 나는 이번 쉼의 첫 단계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들에 도전해 보자’라고 결심했다. 그 첫걸음으로 글쓰기 모임에 가입해 매주 금요일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글을 모아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고, 승인받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비워진 공간을 새로운 도전으로 채우려던 노력이 작은 성과로 이어진 순간이었다.


또 다른 도전은 학창 시절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던 기억 때문에 지금껏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던 나는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그림 그리기 모임에 나가 한 편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거북이를 따라 그리다가 점차 섬세한 풍경을 그리며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주변에서도 칭찬이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글과 그림을 함께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금요일에 외로움 속 희망을 표현한 글을 쓰면, 일요일에는 이를 표현하는 해변가의 외로운 사람 그림자를 그리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


그림을 그리며 어두운 부분을 그리면 밝은 부분이 더 돋보이는 것을 느꼈다. 이는 금요일의 글쓰기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내게 쉼 이상의 의미를 안겨줬다. 그렇게 글과 그림이 함께하는 작업은 내가 쉼을 통해 얻은 가장 보람 있는 도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를 도와준 모임의 모임장님과 회원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래서 최근에 일본 여행 갔다가 돌아오며 감사 인사와 함께 전달할 초콜릿을 사 왔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한 개씩 나눠드릴 것이다.

24년에 처음 시작했던 달리기 모임을 계기로 알게 된 동생과 매주 수요일 스쿼시를 치기 시작했다. 14년 간 취미로 해왔던 배드민턴과 비슷해서인지 바로 서브와 렐리가 가능했다. 스쿼시는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해보고 싶었던 스포츠였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이유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나 자신의 핑계에 계속 발목이 잡혔었다. 계기가 없으면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무작정 도전했다.


이렇게 짧고도 긴 두 달간의 휴식 동안 나는 살면서 한 번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새롭게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나를 증명하고 하루를 채우는 것은 9년 간 쌓아온 경력이었다.


새로운 사람과 자기소개를 할 때, 단순히 ‘구직 중이에요’ 혹은 ‘일을 쉬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건 내겐 익숙지 않았다. 평생 일을 쉬어본 적 없던 내가 드디어 쉼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회사가 두 달째 월급을 지급하지 않아 실업급여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IT 서비스 기획자입니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깨달았다. 돈을 벌고, 일을 하며 기본적인 삶의 안정감을 위해 직업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직업이 사라지고 일이라는 자리가 비워져 보니 비로소 어떤 것이 나를 진정으로 채우는지, 또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인지는 실행으로 옮겨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매년 1월 1일은 첫 번째 뜨는 해를 바라보며 한 해의 의사 결정 기준이 될 한 단어를 정한다. 2025년의 단어는 ‘질주’로 결정했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느꼈던 나를 증명할 수 없음이 답답했고,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한 문장으로 소개할 수 있었던 과거가 그리웠다. 기본적으로 돈이나 소소한 일상과 자유가 있다면 난 남은 일생을 모두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반대로 나를 억압하던 소속감과 의무감이 직장이 그리웠다.


비워보니 어떤 것을 채워야 될지 본능으로 느껴졌다.

나는 질주본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멈춰 있는 자유는 나와 맞지 않았다. 고민하고 성장하며 발밑만 바라보던 바쁜 나 자신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1월 1일 다짐한 ‘질주’를 실현하고자 하루에 최소 한 곳, 많게는 일곱 곳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동안 거절 했던 헤드헌터의 포지션 제안과 긴급 채용을 제안하는 회사들의 포지션도 모두 승인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구직급여를 7개월 동안 받을 수 있기에 반년은 쉬어보려고 했으나, 2개월의 휴식이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오히려 넘치는 에너지와 의욕으로 2개월 안에 취업을 목표로 삼았다. 에너지와 의욕이 넘치니 하루에 2시간만 자도 잠이 오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지독한 고독에 휩싸였다.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휴식이 아니라 괴로움이었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지와 무언가 하고 싶은 그 열정이 올라오는데, 아무것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는 그 답답함이 나를 계속 뛰고 싶게 만들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뛰고 싶은 에너지를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졌다.


한 번도 쉬어보지 못했을 때는 번 아웃으로 인해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 조용히 사는 것을 꿈꿨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사람도 활동도 모두 지쳐서 그만두고 싶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를 가장 잘 아는 가족과 친구들이 나의 성향과 경험을 빗대어 그런 결정을 뒤로 미루라는 조언을 했고, 지금도 그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그렇기에 그분들에게 오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를 단단히 지탱해 주는 사람과 경력이 있기에 나는 쉽게 무너지지 않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증명할 수 있는 경력이 있으니 어딜 가나 먹고사는 건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나를 깊게 이해하고 도움 주는 사람들에게 사소한 감사한 표현에서 이런 관계들이 점점 더 단단해지고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한결 같이 나를 믿고 응원해 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덕분에 제가 행복함을 느껴요. 항상 건강하세요’

이런 표현들은 하고 나서 뿌듯하고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번 글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내가 가득 차서 잘 모르겠으면, 비워보고 어디로 가야 될지 몰라서 혼란스러울 때는 무엇이든 한 번씩 경험해 보고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보면 비로소 채우는 게 보이는 것 같다.

마치 내가 ‘질주본능’을 깨달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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