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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공여행

만두 서른 개, 편수 세 그릇

by 이안

만두 서른 개, 편수 세 그릇


추운 겨울. 겨울이면 생각나고, 겨울이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바로 만두다. 기름에 튀겨도, 찜통에 쪄도, 뜨끈한 국물에 끓여 먹어도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만두. 메인으로 먹어도, 조연으로 곁들여도 사시사철 언제나 맛있는 것이 만두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 한국인에게 만두는 설날에 먹는 떡만둣국에 그 상징성이 있다.


만둣국의 국물은 뭘로 우려내는 게 제일인가. 멸치, 양지머리, 사골 셋 중에 맛으로 치면 양지머리가 최고다. 양지를 푹 끓여 살짝 노리끼리한 빛을 띠는 시원한 국물. 그 위로 커다란 만두가 놓이고, 결결이 찢어서 무친 양지머리 고기를 올리면 천하 일미다.


하지만 자주 손쉽게 끓여 먹기엔 역시 멸치가 최고다. 깔끔하고 시원한 멸치 육수는 소고기 육수 못지않게 맛있다. 하지만 뽀얀 사골은 너무 묵직해 만둣국보다는 깔끔한 흰밥에 더 잘 어울린다.


만둣국에 올리는 고명은 보통 달걀지단을 쓴다. 달걀흰자와 노른자를 나눠 따로 부쳐 골패 모양이나 마름모 모양으로 잘라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지단을 돌돌 말아 채치듯 가늘게 썰어 살짝 소복하게 올린다. 그것도 귀찮거나 시간이 없을 때는 달걀을 한데 풀어 넣기도 한다.


고기 고명도 집집마다 다르다는 걸 시댁 가서 알았다. 매곡이 고향이신 어머니는 다진 소고기를 양념해서 자작하게 볶아 그걸 얹으셨다. 작은 냄비에 이렇게 '꾸미'를 만들어 두시고 연휴 내도록 쓰셨는데, 뽀얀 사골육수와 모양도 맛도 참 잘 어울렸다.


지역에 따라 만두 레시피도 모양도 다르다. 크기가 작고 깔끔한 개성만두, 양쪽 귀를 뚫어 터지는 것도 막고 간도 더 잘 배게 만드는 서울 만두, 큼직하게 빚어 양 끝을 맞물려 둥글고 먹음직스러운 이북식 만두, 피 없이 굴려 만드는 평안도식 굴림만두까지. 두부를 으깨고 녹두나물과 돼지고기를 담뿍 넣은 소를 방망이로 밀어낸 만두피로 싼 다음 꼭꼭 눌러 주름잡아 만든 만두는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옛날에는 만두에 꿩고기를 넣었다고 하는데, 집에서는 먹어보지 못했고 좀 커서 63 빌딩에서 파는 걸 먹어보긴 했다. 그 집 꿩냉면도 맛있었는데, 요즘도 하려나.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지만, 꿩만두는 먹어봤어도 닭만두는 못 먹어봤으니, 만두 한정으로는 꿩대신 돼지인 셈이다.


만두소에 김장 김치를 넣기도 하는데, 서울에선 김치 속을 털고 씻어 만들지만, 김치 속만 털어내고 꼭 짜서 쓰기도 한다. 물론 김치가 들어가는 비율도 다르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김치 간이 세고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북쪽과 남쪽의 만두 맛은 사뭇 다르다.


결혼 초기 어느 해 겨울. 만두 킬러인 나는 '만두 해 먹자'라는 어머니 말씀이 반가워 신나게 손을 보탰지만, 시고 매운 김치가 한가득 들어간 만두는 내게 너무 자극적이었다. 신김치나 김칫국을 싫어하는 내게 김치가 한가득 들어간 김치만두는 정말 먹기 힘들었다. 김장 김치 해치우는 데는 만두만 한 것이 없다고 하시지만, 애당초 손이 왜 그렇게 커야 했는지. 그건 모르겠다.


초등학교 5, 6학년, 한창 먹보였던 시절에는 집에서 빚은 손만두를 서른 개도 넘게 먹었다. 무슨 까닭인지 많이 먹는 것에 부심을 느끼던 때라 사촌들이 모이면 서로 먹은 개수를 자랑하기도 했었다. 나이 든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 아이들 어릴 때던 양을 봐도 그때의 나는 참 대단한 먹보였나 싶다.


여름에 먹는 만두는 또 따로 있다. 겨울 만두에 돼지고기가 제격이라면, 여름 만두에는 소고기다. 아무래도 냉장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돼지고기는 빨리 상했기에 여름 음식에는 맞지 않아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애호박과 소고기를 가늘게 썰어 넣어 만든 만두는 편수라고 부르는데, 표고버섯까지 들어가 시원한 감칠맛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겨울 만두가 송편 비슷하게 반달 모양으로 생겼다면, 여름 만두 편수는 네모난 모양에 마무리를 대각선으로 해서 보다 현대적이다. 어찌 보면 겨울에는 원만한 형태를, 여름에는 각진 형태에서 계절을 극복하려는 마음이 디자인에 반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큰 애를 낳기 석 달 전 여름. 큰 시누 집에 모여 편수를 만들어 먹었다. 사실 편수는 그때 처음 맛보았는데, 야들야들하고 매끈매끈한 만두가 얼마나 맛있던지.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무뚝뚝하신 아버님께서도 '많이 먹어라' 하셨지만, 난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이미 세 그릇이나 먹어버린 뒤였기에.


만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지만, 사실 세계 어디에서나 사랑받는 음식이다.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베트남의 짜조, 러시아의 펠메니, 터키의 만티, 네팔이나 티베트의 모모까지. 남미에는 엠파나다나 파스텔뿐만 아니라 수천 년 전 인디오의 전통이 담긴 타말도 있다. 중국의 빠오즈나 일본의 교자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기후와 문화가 다른 세계 각 지역에서 나름의 만두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든 사람이라면 보편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떤 하나의 기원이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 전 지구로 퍼져나간 것일까? 다음엔 만두의 기원과 전파에 대해 한번 얘기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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