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연우가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강아지 좀 봐주세요!”
현관으로 나온 엄마는 강아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 웬 강아지니?”
“집에 오는 길에 나무 밑에 상자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 얘가 덜덜 떨고 있었어요. 여기 편지도 있는데, 아마 누가 버렸나 봐요.” 연우는 엄마에게 강아지와 함께 들어있던 쪽지를 드렸다.
[사정이 생겨 더 이상 키울 수 없습니다. 부디 좋은 분이 거두어 주세요. 죄송합니다.]
쪽지를 건네받아 읽은 엄마는 얇은 수건으로 싸인 강아지를 보고 미소를 띠었다. “수건? 뭐든 미리미리 잘 챙기는 사라가 수건을 또 챙겨갔구나. 우산도 챙기고 수건도 챙기고. 사라는 백 점짜리 헬퍼 친구네.”
"네, 비 올 때를 대비해서요." 사라가 태연하게 답했다.
엄마는 강아지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떨고 있는 작은 몸을 헤어드라이어로 말리고, 따뜻한 우유를 조금 먹인 뒤에야 강아지는 겨우 진정했다.
"엄마, 얘 어떡해요? 우리가 키워도 돼요?"
연우가 간절한 눈빛으로 엄마를 올려다봤다. 엄마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연우야, 강아지 키우는 건 정말 큰 책임이 필요한 일이야. 매일 밥도 챙겨줘야 하고, 산책도 시켜줘야 하고..."
"제가 할게요! 제가 다 책임질게요!"
"하지만 너도 몸이 불편하잖니. “
순간 연우의 표情이 굳었다. 사라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제가 도울게요. 연우가 할 수 있는 건 연우가 하고, 제가 도와야 하는 부분은 제가 하면 돼요. 우린 한 팀인걸요!”
엄마는 강아지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연우를 바라봤다. 딸아이의 눈빛에는 1년 만에 처음 보는 간절함이 있었다.
"알았어. 일단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검진받고, 주인을 찾는 공고도 올려보자. 만약 일주일 동안 주인이 안 나타나면... 그땐 우리가 키우는 걸로 하자."
"정말요?! 와아!"
연우가 환호성을 질렀고, 강아지도 작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엄마는 일주일 동안이라도 집에서 함께 지내려면 깨끗이 씻겨야 한다면서 욕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덜덜 떠는 강아지를 수건과 드라이로 다시 한번 말렸다. 엄마가 강아지를 품에 꼭 껴안고 한참 있자 떠는 걸 멈추고 잠이 들어 버렸다. 거실 한 귀퉁이에 커다란 방석과 쿠션을 놓고 잠든 강아지를 내려놓았다. 쌔근쌔근 잠자는 강아지. 숨 쉴 때마다 통통한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더 귀여웠다.
“아까 쪽지도 그렇고, 아무래도 일주일 지나고 난 다음에도 주인은 안 나타날 거 같지?”
“응. 나타날 거면 오늘 같이 비 오는 날 버리지도 않았겠지?”
아이들은 강아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이름 뭘로 지을까?”
“글쎄~ 바둑이? 메리? 도꾸?” 사라가 데이터에 있는 강아지 이름을 이것저것 말했다.
“사라야, 시골 할머니 같아!” 연우가 숨죽여 웃었다.
“음… 뭉치 어때? 아까 털이 뭉쳐있어도 귀엽더라. 그거 보고 뭉치란 이름 생각났어.”
“할, 할머니?” 할머니 소리에 사라가 반응했지만, 연우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응. 사라야. 나, 결심했어. 내가 뭉치를 지켜줄 거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거, 오늘 처음 알았어. 늘 너한테, 엄마 아빠한테 도움만 받았는데... 뭉치한테는 내가 필요해."
연우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뭉치를 위해 우유를 가지러 가고, 배변 패드를 깔아주려 애쓰는 과정에서 연우는 몇 번이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휠체어에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뭉치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움직이려 노력할 때마다 멈춰 있던 연우의 근육들이 기분 좋은 비명을 질렀다.
"사라야, 내일은 재활 훈련 더 많이 할래. 나, 어버이날에 엄마 아빠한테 걷는 모습도 보여드려야 하지만... 뭉치랑 같이 산책도 가고 싶어. 내가 직접 목줄을 잡고 정원을 같이 걷고 싶어."
[데이터 기록: 사용자 김연우. 재활 동기 부여 지수 최고치 도달.]
사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평화로운 거실의 조명 너머, 사라의 망막 디스플레이에 다시 한번 나천재의 다급한 패킷이 도착한 것은 연우가 잠든 깊은 밤이었다.
[수신: 나천재 / 발신: 아담]
[아담, 오늘도 말썽 없이 잘 지냈지?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해두는 건데, 위험한 일이 생기면, 내가 좌표 찍어주는 곳으로 피해. 차돌 연구원 동생이 하는 가게야. 알았지?]
사라의 눈이 서늘한 파란빛으로 빛났다. 뭉치를 끌어안고 잠든 연우의 이불을 고쳐 덮어주며, 사라는 처음으로 '두려움'과 비슷한 전류의 흐름을 느꼈다.
‘위험한 일이라니, 무슨 일일까? 연우의 기적은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눈을 감고 별일 없기를 바랐다.
아이들이 아지트처럼 사용하고 있는 연우네 지하실은 지하실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볕이 잘 들고 통풍도 잘 되었다. 경사지를 이용해 집을 지었기 때문에 남쪽의 커다란 통창 너머는 푸른 잔디가 펼쳐진 연우네 안마당이었고, 북쪽은 지하공간다운 곳이었지만 반지하로 창문이 나 있어 문만 열면 맞바람이 치도록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하실이라는 특성상 아무리 떠들어도 소란스럽게 굴어도 아파트처럼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들의 아지트로는 정말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그래서 연우와 한주, 미서, 태호 네 아이들은 늘 한데 모여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마당에서 뛰어놀다 간식도 먹었다. 그러니까 방과 후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 거의 모든 활동을 연우네에서 함께 한다고 보면 되었다.
아이들은 오늘도 연우네 지하실에 모여 뭔가를 하고 있었다. 널따란 테이블에서 그리고 오리고 풀로 붙이고… 아주 열심이었다.
땡~. 소리가 들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연우 엄마가 트롤리를 몰고 나왔다.
“얘들아, 간식 먹자!”
“앗!”
“안돼!”
“아줌마, 잠깐만요!”
아이들이 꺅꺅대며 달려가 연우 엄마를 막아섰다.
“아줌마, 안 돼요. 이거 보면 안 돼요!”
“안돼?”
“네. 이건 저희가 가져갈게요.”
“감사합니다. 와, 맛있겠다!”
아이들은 트롤리에 담긴 갓 구운 쿠키와 우유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아직 완성도 안 됐고, 완성이 되었더라도 들킬 수는 없었다. 깜짝 선물이니까!
연우 엄마는 멀리서 슬쩍 보는 것만으로 뭔지 눈치를 대충 챘지만, 속으로만 웃을 뿐, 겉으로는 아쉽다는 티를 팍팍 내며 테이블 쪽을 목을 쑥 빼고 기웃거리는 시늉을 했다.
“아이~ 뭔데 그래, 얘들아? 쪼금만 보면 안될까아?”
“네! 절대 안 돼요!”
아이들이 소리치며 등을 밀어대자 연우 엄마는 아이들한테 밀리는 척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이 차암~ 쫌 보여주지~~ 알았어 알았어. 나중에 다 되면 꼭 보여줘야 한다~”
엄마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아이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들킬 뻔했다.”
“그러게 말이야.”
“뭐야, 한주! 너 벌써 먹기 시작했냐?”
테이블로 미처 가져가기도 전에 과자부터 먹기 시작한 한 주를 보고 아이들이 소리쳤다. 한주가 더 건드리지 못하게 미서가 간식이 담긴 트롤리를 밀고 테이블 앞으로 가져갔다.
“우리 이거 먹고 하자!”
테이블이 얼마나 큰지, 어질러 놓은 것들을 치우지 않아도 쿠키 바구니와 우유를 놀려놓고 모여 앉아 먹을 수 있었다.
“음~ 맛있어!”
“와! 대박!”
뇸뇸뇸
냠냠냠
“이거 하얀 거, 이거 뭐야? 고소하고 맛있다!”
“마카다미아? 그거 진짜 맛있지?”
“응! 땅콩 비슷한 맛인데, 이게 더 맛있다. 크림 같아!”
아이들은 손과 입가에 과자 가루를 잔뜩 묻힌 채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입가에 하얀 우유 수염도 생겼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뭔가 ‘먹을 필요가 없는’ 사라는 한 발짝 뒤에서 그런 광경을 바라보았다. 과자 가루로 엉망이 된 테이블, 우유 자국과 과자가루 범벅이 된 아이들의 얼굴과 손바닥….
사라의 고성능 시각 센서는 아이들의 입가에 묻은 마카다미아 부스러기의 좌표를 0.1mm 단위로 정밀하게 계산해 냈다. 당장이라도 부드러운 가제 수건을 꺼내 저 지저분한(?) 흔적들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헬퍼 로봇으로서의 기본 프로토콜이 '청결 유지'를 외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라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다 멈췄다.
[시스템 경고 : 과거 데이터 참조]
사건 기록_: 05-12,_ 교실 내 조력 시도_._
결과_:_ 연우의 표정 변화_(_당황 _85%,_ 거부 _12%)._
학습 내용_:_ 인간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에 침범당할 때 _'_도움_'_이 아닌 _'_침해_'_로 규정함_._
지난번 학교에서 연우의 책상을 대신 정리해 주려다 보았던 연우의 그 묘한 표정. "사라야, 이건 내가 할 수 있어"라며 작게 젓던 고개. 아담 시절에는 '효율'만이 정답이었지만, '사라'가 된 지금은 달랐다.
'지금 여기서 우유 수염을 닦아주는 행위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인격권 침해인가, 아니면 단순한 위생 관리인가.'
사라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연산 회로가 팽팽하게 맞붙었다. 굴지의 인공지능 아담이 고작 '우유 수염' 하나를 앞에 두고 무한 루프에 빠진 꼴이었다.
사라 내부의 연산 모듈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 냈다.
"저 우유 수염과 과자 가루는 '오염'이 아니다. 아이들이 간식 시간에 얼마나 몰입했는지를 보여주는 '행복의 잔여물'이다.
만약 내가 지금 저 수염을 닦아내기 위해 개입한다면, 아이들의 대화는 끊기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의 주파수도 흐트러질 것이다. 그것은 청결 관리가 아니라, 아이들이 누리고 있는 '즐거움의 관성'을 강제로 멈추는 일종의 '시스템 가동 중단(System Shutdown)'과 같다."
결국 사라는 뻗으려던 손을 조용히 거두어 앞치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대신, 가장 부드럽고 자연스러운(학습된) 손길로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작은 손거울 꺼내 아이들에게 내밀었다.
직접 닦아주는 대신 '힌트'를 주는 것. 이것이 사라가 도출해 낸, '도움'과 '존중' 사이의 최적의 합의점이었다.
"어? 내 인중에 하얀색 줄 생겼다! 진짜 수염 같아!" "깔깔깔! 야, 너 산타클로스 같아!"
거울에 비친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보며 아이들은 한바탕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라는 그 웃음소리의 주파수가 꺾이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손등으로 입가를 슥슥 문질러 '행복의 잔여물'을 정리하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에너지가 충전된 아이들의 손이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제작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카네이션 꽃송이를 큼직하게 그려 ‘정성껏’ 색칠했다. 커다란 우유팩을 오리고 뒤집어 매직펜으로 바구니처럼 꾸며준 다음 스테이플러와 셀로판테이프로 붙여 작은 바구니를 만들었다. 나름 그럴싸해 보였다. 그리고 그려둔 꽃을 오려 빨대에 붙인 다음, 그 바구니에 수북하게 담았다.
"사라야, 이것 봐! 진짜 꽃바구니 같지?"
연우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사라는 아까 그려둔 꽃송이들을 정교하게 오려 바구니 안에 수북이 담는 연우의 손길을 도왔다. 마지막으로 바구니 손잡이에 빨간 리본을 묶어 멋을 내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어버이날 카네이션 꽃바구니'가 완성되었다.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와아~! 꽃바구니 완성이다!”
“멋지다!”
사라는 완성된 꽃바구니를 바라봤다. ‘뭐가 완성이냐? 꽃도 없고 바구니도 없는데 무슨 꽃바구니냐?’ 싶었다. 하지만, 연우나 다른 아이들 부모님들이 그렇다고 이걸 버릴 거 같지는 않았다. 어쩐지 기뻐할 것 같았다. 무엇 때문일까?
이 종이꽃더미 안에는 자신이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버이와 자녀 사이는 개발자와 인공지능 관계 같은 것인가. 잘 모르겠다. 그럼, 나천재와 나는 부모자식 관계인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친구인지 주인과 서버의 관계인지 그건 가끔 착각되지만, 부모 자식 관계는 아닌 거 같았다.
아, 골아파. 이런 연산은 이롭지 않다. 사라는 아이들의 뒷정리를 도우며 머리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