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추적, 시작!

by 이안

5월 7일 오전.

연구센터 센터장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센터장은 창밖의 평화로운 숲을 응시하며 책상 끝을 초조하게 두드렸다. 화샤 코리아의 압박, 그리고 아담의 코어가 사라(SARA)에게 옮겨갔다는 확신. 그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로 했다.


[연구센터 산하 헬퍼 로봇 H-724, 오작동 보고 접수. 즉시 회수 요망. 사용자 정보: 김연우, 대전광역시 대덕구 용전동. 오늘 중 처리 바람.]


센터장은 책상 위의 결재판을 밀어버렸다. 공문을 띄우는 순간, 운영 기록에 'H-724 강제 회수'가 남게 되고, 이는 곧 나천재와 차돌에게 알림이 간다는 뜻이다. 그는 전화를 들어 보안팀에 연락을 취했다.


"보안 2 팀장, 센터장일세. 자네만 알고 있게."

수화기 너머 보안 2 팀장은 센터장의 온갖 뒷일을 처리해 주며 승승장구해 온 인물이었다.
"네, 센터장님. 말씀하십시오."

"지금 즉시 용전동으로 이동해. H-724, 사라라고 불리는 모델이다. 이건 정식 회수가 아니라 '긴급 보안 점검' 명목이야. 현장에서 아이와 로봇을 분리하고, 로봇만 확보해서 내 개인 창고로 가져와. 절대로 메인 서버 기록에 남기지 마. 알겠나?"

"알겠습니다."

공문 대신 선택한 비밀 전화.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센터장은 창밖을 바라봤다. 5월의 햇살이 연구센터 숲 위로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이제 다 끝난다.'



같은 시각, 보안팀 대기실. 보안 요원 고원영은 팀장의 지시를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헬퍼 로봇 회수는 보통 제조사 A/S 채널의 영역이다. 보안팀이, 그것도 정식 공문 하나 없이 사복 차림으로 출동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기록을 남기지 말라고? 개인 창고로?'


원영의 머릿속에 며칠 전 복도에서 마주친 나천재 연구원이 떠올랐다. 천재는 원영의 형과 어릴 적부터 단짝이었다. 그때 천재는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원영의 어깨를 잡았었다.

"고원영, 혹시 갑작스레 외부 나갈 일이 있게 된다든지, 이상하게 쌔한 느낌 드는 움직임이 보이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라. 알았지?"


이건 쌔한 느낌 정도가 아닌데? 고원영은 급히 메신저를 열었다.

같은 시각. 나천재의 자리.

메시지를 확인한 천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형, 보안 2 팀장 지시로 긴급출동. H-724 사용자와 분리 후 회수. 대덕구 용전동. 기록 남기지 말라는 명령.]


"이 미친 인간이 결국..."


천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기록에 남기지 말라는 건 법을 어겨서라도 뺏겠다는 뜻이다. H-724, 즉 아담의 현재 위치는 용전동. 오후 수업 중일테니 아직 학교일 테지. 그는 떨리는 손으로 사라에게 암호화된 메시지를 전송했다.


[수신: 루카스 / 발신: 가에타노]
[내용: 아말가르트가 움직였다. 센터 보안팀, 회수목적 긴급출동. 즉시 연우와 보배네로 이동할 것. 연우 부모님께도 연락할 것. 서둘러.]


천재는 자동차 키를 낚아채듯 챙겨 차돌의 자리로 갔다.

"차돌아, 가자."
"어디?"
"너네 가게. 지금 당장!"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외근으로 돌려놓은 두 사람은 재빨리 연구소를 벗어났다.




같은 시각. 연우네 학교 3학년 2반 교실.
사라의 망막 디스플레이에 신호가 들어왔다. 암호화 채널. 나천재였다.


[수신: 루카스 / 발신: 가에타노]
[내용: 아말가르트가 움직였다. 센터 보안팀, 회수목적 긴급출동. 즉시 연우와 보배네로 이동할 것. 연우 부모님께도 연락할 것. 서둘러.]


'아말가르트'. 나천재가 즐겨 읽던 소설 속 절대 악의 이름. 사라의 인공지능 프로세서가 순식간에 비상 모드로 전환되었다.


[경고: 비상 프로토콜 활성화. 위협 레벨 — 최상(Critical).]


망막 디스플레이 한쪽에 붉은 텍스트가 떴다가 사라졌다. 사라는 즉시 억눌렀다. 지금은 교실이었다. 연우가 옆에 있었다. 아무것도 티 내면 안 됐다.

그러고는 천천히 교실을 둘러봤다. 선생님이 칠판에 분수를 적고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공책에 받아쓰고 있었다. 연우도 옆에서 열심히 연필을 움직이고 있었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곧 수업이 끝날 거란 사실.


사라는 연우의 팔꿈치를 살짝 건드렸다. 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사라가 연우의 귀에 가까이 대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우야. 쉬는 시간 끝나면 바로 출발해야 해. 연락 왔어."

사라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단단했다. 연우는 사라의 눈동자 속에 비친 붉은 경고등의 잔상을 읽었다.


"설명은 나중에 할게. 지금은 선생님한테 몸이 안 좋다고 말해야 해. 할 수 있어?" 연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라는 거짓말을 가르치는 로봇이 아니었다. 그런 사라가 거짓말을 시킨다는 건, 진짜 큰일이 났다는 뜻이었다.

"... 알겠어."


담임 선생님은 연우의 얼굴을 보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좀 피곤해 보이긴 했어. 조심히 가고, 집에 가면 엄마한테 꼭 말해."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라가 연우의 가방을 챙겨 들고 둘은 교실을 나섰다. 복도를 지나 현관으로 나오는 동안 사라는 이미 경로를 계산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보배네 가게까지. 무장애 데크길을 타면 휠체어로도 갈 수 있었다. 나천재가 미리 알려준 경로였다. 인도와 차도를 피해서 공원 옆 데크길을 따라가면 사람 눈에 덜 띄고, 차가 쫓아올 수도 없었다.


현관을 나서며 사라는 연우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저 사라예요. 지금 연우랑 한남대 앞 보배네 가게로 가고 있어요. 거기서 만나요. 중요한 일이 생겼어요. 아빠도 함께 오시면 좋겠어요. 주소 보내드릴게요.]

보배네 가게 좌표를 찍어 전송했다.


"사라야."

연우가 휠체어를 굴리며 물었다.

"이제 말해줄 수 있어? 무슨 일이야?"

사라는 잠시 망설였다. 연우가 무서워할까 봐. 하지만 지금은 솔직하게 말하는 게 맞았다.

"연우야, 일이 생겼어. 나를 데려갈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대. 얼른 피해야 해."

연우가 멈췄다.

"데려가려는 사람들? 왜?"

"그 사람들은 내 안에 있는 걸 원해. 나를 분해하면 얻을 수 있는 것들."

연우의 눈이 커졌다.

"그럼 어떻게 돼? 사라 너는?"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앞을 바라봤다.


"그래서 지금 피하는 거야. 안전한 곳으로. 할 수 있으면 널 두고 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널 괴롭히겠지. 그러니까 함께 움직여야 해. 그래도 걱정 마. 내가 옆에 있잖아."

연우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라는 연우의 표정을 읽었다. 무서운 것과 화난 것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무서운 건 자기 때문인 것 같았다. 화난 건 사라를 데려가려는 사람들 때문인 것 같았다.

"... 보배네가 어디야?"

"한남대 앞. 나를 만든 나천재 연구원님이 미리 알려준 곳이야. 안전해."

연우는 잠시 사라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휠체어 레버를 힘껏 당겼다.

"빨리 가자."


연우와 사라가 다니는 상록 초등학교부터 한남대 뒷산으로 이르는 산책로는 얼마 전부터 목재 데크가 깔리 무장애 길로 단장되어 있었다. 거친 흙길과 가파른 돌계단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연구센터에서 보안팀이 긴급 출동했어도 이 지름길로 가면 그쪽보다 더 빨리 학교를 벗어나 보배네까지 갈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생긴다.

평일 이른 오후라 산책하는 사람 몇 명이 보였지만 한산했다. 나무 데크 위로 5월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강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연우가 휠체어를 굴리고, 사라가 그 옆을 걸었다.


사라의 내부 센서는 쉬지 않고 주변을 훑고 있었다. 뒤쪽 접근 차량. 인도 위의 낯선 인물. 비정상적인 보행 패턴. 180도 시야를 0.3초 간격으로 스캔하면서, 동시에 연우의 상태도 체크했다. 심박수. 호흡 리듬. 손목 근육의 긴장도.

아직은 이상한 게 없었다.

데크길은 차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나천재가 이 경로를 알려준 이유가 있었다. 차가 들어올 수 없고, 사람 눈에도 덜 띄었다. 데크가 깔린 길은 휠체어로 이동하기도 쉽고, 지름길이라 더 빨랐다. 게다가 아래쪽에서 누가 접근하더라도 이쪽에서 미리 볼 수 있었다.

연우가 레버를 당기는 손에 힘을 주며 앞을 바라봤다. 학교 가방이 등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조퇴하면서 챙길 겨를도 없었던 것들. 오늘 5교시에 수학 시험이 있었는데. 연우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사라야."

"응."

"무섭지 않아?"

사라는 잠깐 생각했다.

"무서워."

연우가 사라를 올려다봤다.

"로봇도 무서운 게 있어?"

"있어. 나도 지키고 싶은 게 생겼거든."

연우가 잠깐 말을 멈췄다. 그러다 조용히 물었다.

"그게 뭔데?"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앞을 봤다. 부드러운 5월의 바람이 불어와 연우의 앞머리를 살짝 흩뜨렸다.


"그래도 도망쳐야 하는 거잖아."

"응."

"나도 무서워."

"알아."

잠시 둘 다 말이 없었다. 데크 난간 너머로 초록빛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산새 두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고 있었다. 봄날 오후가 즐겁다는 듯이.

"근데 말이야."

연우가 그 모습을 잠깐 바라봤다가 다시 앞을 봤다.

"나 사라 없으면 안 되거든. 알지?"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연우의 휠체어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함께 걸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데크 위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늘어졌다. 하나는 작고 둥근 바퀴 그림자, 하나는 그 옆에 딱 붙어 걷는 그림자.

이 길 끝에 보배네 가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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