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을 시작으로 19세기~ 20세기 전반까지 참과 거짓, 실제와 가상에 대한 인식론, 존재론적 물음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과거 이런 인식론 존재론적 질문들이 추상적인 주제에 지나지 않았다면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미디어들의 출현은 이런 질문들을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주제로 끌어왔다.
‘가상’이란 단어를 들으면 VR, AR과 같이 현실과는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플라톤주의자들은 가상을 이미 존재하는 이데아의 모방인 열등한 것이며, 참된 것을 왜곡시켜 제시하는 허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플라톤적 사고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원상과 모상을 구분할 수 없는 디지털 ‘Thing’들에게 가상과 현실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사진의 원본이 어떤 것인지,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음원의 원상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며 구분 짓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아직까지 디지털(가상)로 현실을 모방하는 경우 입자들이 분포하는 ‘밀도’의 양적 차이가 존재하기에 기술적 한계로 인한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가상과 현실의 간극을 빠르게 줄이고 있으며 곧 가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이 되는 시대를 만들게 될 것이다. 일례로 유전자를 조작해서 새로운 가상의 것들(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는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시대의 가상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닌 현실이며 동시에 현실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닌 가상이 된다.
인류는 컴퓨터를 이용해 사람의 사고와 최대한 비슷하게 작동하는 모델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만약 현재의 모델의 작동 방식이 이미 인간의 사고방식과 같다면, 인간의 지능 또한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같은 원리로 작동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실제 생각인 현실과 생각의 시뮬레이션인 가상의 차이는 양적 차이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는 가상의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시대가 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는 마치 완벽히 복제된 디지털의 원상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인간과 컴퓨터의 차이를 구분하는 일도 더는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통상적인 이의 제기는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인간 활동과는 달리 인공지능은 단지 프로그래밍된 것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인간의 창조성과 자발성, 예측 불가능성 또한 일정 이상의 복잡성을 가진 프로그램의 동시적 활동에 의해 ‘창발’ 되는 것이라고 반박될 수 있다. 현대 컴퓨터는 과거의 선형적이고 기계적인 논리를 벗어나 인간의 사고가 미치지 않는 정도까지 그 복잡성을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