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스는 사회를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 두 가지 종류로 분류했다. 게마인샤프트의 경우 Community로 해석될 수 있으며, 어떤 목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 자연적인 의지로 결합된 공동체이다. 퇴니스는 게마인샤프트가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Blood에 기초한 관계로, 혈연관계로 이뤄진 관계이다. ‘Kinship’이 이 같은 형태의 파생어로 볼 수 있다. 둘째는 Place에 기초한 관계로 같은 주거지역을 공유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Neighborhood가 이 형태의 파생어로, 같은 지역을 공유하기에 노동이나 질서 관리에 있어서 협력이 필요하고 위협이나 재앙을 동시에 겪고 헤쳐나가게 된다. 마지막은 Mind에 기초한 관계로, 동일한 계급이나 직업처럼 공통된 상황에 놓여있거나, 유사한 성격을 가질 때 가장 쉽게 발현된다. 이러한 관계는 각자의 양심에 기초해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이기에 다른 관계들과 비교했을 때 더 우연적이거나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뤄진다. 이 Mind에 기초한 관계는 다른 관계들과 연합되어 최고 형태의 공동체로 나타나게 된다. 게마인샤프트에서는 서로 간의 특별한 이해가 성립되며 이는 구성원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게 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이 된다.
게젤샤프트의 경우 Society로 해석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게마인샤프트와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적 의지가 아닌 선택적 의지에 따라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결합체이다. 게젤샤프트는 사회 구성원들의 활동, 권력의 영역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고 다른 구성원의 침범이 적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관계는 게마인샤프트와 달리 타산적인 계약을 기반으로 한 관계이기에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선호되며, 자신이 제공하는 것과 동등한 보상이 없다면 타인을 위해서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다. 또한 감정과 같이 가시적 물질적으로 변환될 수 없는 요소도 교환할 수 있는 대상으로 물화될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게젤샤프트에서 다른 구성원들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퇴니스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게마인샤프트에서 게젤샤프트로 변해간다고 주장한다.
다른 어떠한 사회보다도 한국 사회는 특히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의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가 쓰는 언어에서도 게마인샤프트적 요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어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물건이나 장소들을 지칭할 때 ‘나’ 대신 ‘우리’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동네 심지어 우리 아내, 우리 남편과 같이 실제 공유할 수 없는 것에도 '우리'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이 같은 표현방식은 단일민족, 혈통 등 게마인샤프트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경향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된다.
과거의 국채보상운동이나 IMF 시절의 금 모으기 운동 또한 한국사회의 게마인샤프트적인 모습에 기인한다. 이 두 사건 모두 한 민족이라는 Blood에 기초한 관계를 근거로 사람들에게 모금을 진행했다. 또한, 국민들이 같은 Place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동시에 같은 위협을 느끼며 이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어떤 강압이 없었음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위기상황에서는 안전자산인 금을 보유하려고 하는 것이 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위해 개인에게 손해가 되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보면 Mind에 기초한 게마인샤프트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 반대인 게젤샤프트적인 모습 또한 한국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업들의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이나, 노사 갈등, 사회 양극화, 경쟁 위주의 교육시스템 등 한국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퇴니스가 말하는 게젤샤프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모순적인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의 공존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야기한다.
정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전 인류로 게마인샤프트적 관계가 확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화되기 어렵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게젤샤프트를 추구하더라도 다수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선거’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때문에 이상적이진 않지만, 자본주의와 양립하는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게젤샤프트적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게마인샤프트적인 요소가 정치와 결합되며 이러한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지역주의나 학연주의 모두 게젤샤프트적 사회의 게마인샤프트적 모습이다.
반대로 게마인샤프트 관계가 요구되지만, 게젤샤프트의 모습을 띄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리스도교를 따르는 교회의 경우 모든 인류는 신에 의해 자연적으로 결합된 게마인샤프트이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교리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이나 물질(자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에 게젤샤프트와 정반대의 모습을 추구한다. 하지만 교회가 게젤샤프트의 모습을 띄면서 세속화되고 인류에 대한 사랑 대신 이해관계를 따지게 됐다. 이러한 경향은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 모델은 게마인샤프트의 모습이 비단 Blood, Place, Mind에 기초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닌, 모든 인류에 기초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이상적인 사회에 다가가기 위해선 게젤샤프트가 가지는 합리성, 효율성과 같은 긍정적인 부분을 받아들이되 게젤샤프트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잃지 않아야 한다. 또한, 게마인샤프트의 긍정적인 모습을 게젤샤프트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