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As We May Think
https://www.theatlantic.com/magazine/arc
기자였던 아버지 덕에 어린 나이부터 사진을 찍곤 했다. 필름 카메라를 쓰던 시절이었던 만큼 내가 카메라로 원하는 순간을 기록할 기회는 한 필름당 많아야 한두 번 뿐이었다. 사실 당시 카메라는 수동이었기에 대부분 내가 찍는 사진들은 색이 온전치 않거나 포커스가 맞지 않게 나오기 일쑤였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 즈음 집에 디지털카메라가 들어왔다. 디지털카메라의 오토 모드를 사용하면 내가 수동으로 조작하던 것보다 더 좋은 사진들을 버튼 한 번만으로도 찍을 수 있었다. 그 뒤론 내가 원하는 장면들을 내가 원하는 만큼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은 Vannebar Bush가 살았던 1945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다. 그는 당시 신기술이었던 기술들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지금은 사장되어버린 마이크로필름을 이야기하거나 기술적인 메커니즘에 적절한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야 한다는 지금 보기에는 다소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도 디지털 사진을 찍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시대는 머신러닝, 딥러닝이나 나노공학, 유전공학들이 신기술로 취급된다. 이에 관련한 수많은 저널이 쏟아지고, 많은 미디어에서 기술의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최고급 기술처럼 느껴지는 인공지능이나 나노기술 또한 70년 뒤에는 마치 디지털카메라처럼 대중화될 것이다. 지금의 접근 방식 또한, 몇십 년 뒤엔 아무도 마이크로필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모든 기술은 발전할수록 ‘Direct Path’를 가지게 된다. 과거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포커스를 맞추고 조리개를 조정하고 셔터스피드를 조정하는 긴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사진 찍을 대상을 보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모든 과정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조정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Vannebar Bush는 1945년의 비슷한 개념으로 계산기를 제시한다. 인공지능은 이런 계산기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현대사회의 계산기가 될 것이다. 현대사회는 논리수학 지능이 크게 강조되지만,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는 시대에는 더는 논리적 사고가 인간의 중요한 가치가 되지 못할 것이다. 마치 계산기를 사용하 듯 자료의 선택이나 처리 방법을 선택하고 카메라 버튼을 누르듯 쉽게 논리적 법칙에 따른 결론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장공간의 한계가 없어져 과거를 모두 회상할 수 있는 시대, 누구나 논리적 객관적 분석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면 인간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까. 현대사회에서 합리적 선택은 곧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합리성과 효율성은 인류를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전쟁으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광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화약의 발명이나 핵물리학의 발전이 그랬듯 기술의 발전은 양날의 검이다. 경각심 없는 기술의 발전에는 반드시 큰 희생이 뒤따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