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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Jul 22. 2024

밤의 여왕과 비망록

브런치 글쓰기 시작하면서


제목만 봐도 매력적인 소설이 있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이 그러하다. 우선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라는 작품의 (제목을) 보라. 얼마나 멋진가.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책상 앞에 앉은 낡은 남자의 식은 가슴에 불을 지르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아이유 주연의 드라마 <호텔 델루나>가 떠오르기도 하고 달밤에 산책하는 히잡 쓴 뱀파이어 소녀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니 식은 피가 조금은 부글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결국 나는 하릴없이 책상 앞에서 끄적이는 이 덧없고 무쓸모한 단상들을 모아둘 브런치의 글 서랍장 제목으로 <밤의 여왕과 비망록>이라고 적었다. 역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달…     


달은 밤마다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우리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흘러간다. 만약 우리가 달이 없는 행성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면,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뭔가 빠진 느낌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 행성의 사회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일종의 ‘결핍’이라고 진단하겠지만 도무지 무엇의 결핍인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뭔가 둥글고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우리를 지켜주는 듯한, 너무 환하지도 않고 너무 어둡지도 않고, 어느 날에는 반쪽으로 줄었다가 실낱처럼 사그라들다가, 다시 서서히 차오르는 뭔가… 그것을 바라보면 여인의 가슴이 들뜨기도 하고, 흑기사 배트맨이 악의 무리를 혼쭐 내주기 위해 등장할 때 풍류를 더해 주는 그 뭔가…아무튼 그 뭔가… 빠진 삶이야, 우리 삶은, 이라고 중얼거릴 게 분명하다. 달이 무자비한 밤의 여왕인 것은 바로 그런 신비한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지구인들 역시 달의 존재를 점차 잊어가고 있다. 우선 달을 바라보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었다. 특히 중년 남자는 피곤한 삶에 찌들리다 보니, 달에 대한 애정이 속절없이 식어버린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 데이트할 일도 없고 아내의 손을 잡고 밤 산책하러 나가는 일도 이제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젊은이들의 데이트 풍속도 변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청춘남녀들이 달밤 데이트를 할 때, 솔직히 밤하늘의 달 쳐다볼 일이 있겠는가? 거의 없다. 무슨 낭만 씨 까먹는 로맨티시스트들도 그만큼 사라진 탓이다. 왜 그런지는, 그거야, 나도 모르는 일이다. 내 탓은 분명히 아니다.      


신혼 시절, 아내와 어느 절에서 달구경 하다가 소원이란 것도 빌었지.      


그런 걸 우리는 추억이라고 한다.      


남자의 추억은 디테일하게 풀어 여기에 상세히 적을 일은 절대로 아니다. 물론 추억을 팔아 돈을 버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내 경우, 아내의 허락 없이 아내와의 추억이든 뭐든 팔았다가는 제 명에 못 산다. 적어도 일주일은 혼자 식은 밥을 먹게 될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목숨 걸고 추억팔이할 생각이 전혀 없다. 몰래 불법 거래하듯 익명으로 다른 사람인 척 가면 쓰고 팔아야 한다. 그 추억이란 것도 이리저리 찢고 어떤 장면은 지우고 어떤 대사는 적당히 가공하여 팔아야 한다.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이 탓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일 년 내내 달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그러하니 이제, 달은 소설이나 드라마 속 제목으로만 만나게 되는 것 같다. 하인라인의 소설은 달을 무대로 지배자와 종속자의 대결을 그린 공상과학 이야기라고 한다. 언젠가는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늘 그뿐, 아직도 읽지 못했다. 제목이 주는 멋진 매력이 혹시라도 황당한 줄거리 때문에 반감되지 않을까, 그래서 안 읽었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그냥 게을러서 그리되었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다른 소설 제목들도 무척 좋다.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여름으로 가는 문

달을 판 사나이     


오늘은 구립도서관에 가서 하인라인의 작품을 몇 권 빌려올까 한다. 

제목만큼 흥미로운 이야기이길!

그러니까 행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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