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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Jul 22. 2024

죽은 자와 협상하기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쓰기에 대해서>를 읽고

세월은 가고, 헛되이 나이 들어가거나 늙어간다고 느낄 때, 정혜윤(라디오 PD, 작가)은 ‘보 브라더스’를 소개해 준다고 한다. 어느 날, 아는 지인에게 약속했다고. 그런데 ‘보 브라더스’는 바로 보톡스와 보르헤스라는 것이다. 보톡스는 의사에게, 보르헤스는 아쉬운 대로 자신이 소개해 준다고. (정혜윤 『침대와 책』에서)


나의 경우 보르헤스는 (알아서) 몇 개 읽었으나 보톡스는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세월은 가고, 헛되이 나이 들어가거나 늙어간다고 느끼고 있지만, 보톡스는 아직! 은퇴하면 보톡스 대신 수염을 길러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막상 수염 기른 은퇴자들의 모습을 보니 그닥 마음에 안 들어, 요즘은 아무래도 보톡스 쪽으로 선호도가 기울고 있다.   




세월이 아직 덜 가고, 아직 덜 헛되게 나이 들고, 아직은 젊은, 글쓰기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쓰기에 대하여』를 소개해 주고 싶다.  처음에는 작법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1장을 읽고 2장을 읽을 무렵, 이 책이 글 잘 쓰는 법에 관한 작법 책이 전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영어 원제목을 살펴보았는데, 영어판 제목은 『Negotiating with the Dead』이다. 직역하면 ‘죽은 자와 협상하기’가 된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요청으로 학자와 학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여섯 번의 강연 시리즈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의 주제는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를 논하고 작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고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솔직히 이런 식의 소개는 모두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것 같다. 그것보다는 글쓰기라는 어둠의 미로를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경고와 함께 위로와 격려를 건네주는 책이라고 할까. 그게 더 좋은 소개 같은데, 사실 작가 자신이 서문에서 밝힌 말이다. ㅎ


마거릿 애트우드는, 운이 좋으면 우리가 그 글쓰기라는 어둠의 세상 속에서, 뭔가를, 어둠을 조금이라고 밝히는 뭔가를 가지고 나올 수 있으리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담담하게라니! 마거릿 애트우드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느껴질 뿐, 전혀 담담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넓고 깊은 문학적 소양과 인문학적 지식을 능숙하게 동원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친근하고 위트가 있다.


대가도 애송이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느끼게 해 준 1장 제목은 <길 찾기>. 작가는 모호한 이중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을 매우 설득력 있고 진솔하게 다룬 2장의 제목은 <이중성>이다. 3장은 <헌신>인데, 작가가 숭배해야 하는 제단에 관해 이야기한다. 명예와 부의 추구, 예술지상주의,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작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논한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작가가 어느 제단을 숭배해야 할지 대해 어떤 단정적인 결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세 개의 제단 모두 딜레마가 있고 따라서 어느 위대한 펜의 신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라고 말하는 걸까.


4장 제목은 <유혹>인데, 3장의 연장선에 있는 느낌이다. 작가와 작품의 도덕적 책임 등을 깊이 있게 논한다. 5장 <성찬식>에서는 작가와 독자, 그리고 매개체로서의 책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이 장은 특히나 아주 재미있다. 작가는 동시에 독자가 되어야 하며, 읽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6장은 <하강>인데, 죽은 자와 협상을 이야기한다. 즉, 작가의 운명과 희망을 논하는 장이다. 마거릿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글을 짓고자 하는 욕구와 밀접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죽은 자를 불러내 문턱을 가로지르며 그들과 거래를 합니다. 우리 세계와 그들 세계 사이에 언제나 문턱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펜실베이니아에 가면 낡은 헛간 외벽에 육각형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이며, 죽은 자를 불러낼 때 주변을 둘러 원을 그리는 것이고, 오디세우스가 검을 빼 들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역(왁자지껄한 이승)이 아닌 문턱 너머 그들의 영역에서 죽은 자를 접하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길을 떠날 순 있어요. 죽은 자의 세계로 내려갔다가 산 자의 세계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어요. 단, 그러려면 운이 따라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저승으로의 여행은 굉장히 힘든 일(그곳에 갇힐 수도 있으니까요)이면서 전적으로 용기를 시험하는 장이에요. 그래서 서양은 물론 다양한 문화권의 전설에서 그토록 많은 영웅들이 저승으로 길을 떠나는 겁니다. 영웅들은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 왜 모험을 택할까요? 왜냐면 죽은 자들이 위험한 왕국 저 깊은 곳에 값지고 귀한 것들을 숨겨뒀는데, 그중에 그들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귀한 것들이 무엇일까요?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지식

사악한 괴물과 싸울 기회

영영 잃어버린 사랑하는 사람


...(중략)...


모든 작가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습니다. 계속 글을 쓰는 한, 작가는 앞서 글을 썼던 작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탐구하게 됩니다. 동시에 그들에게 평가받고 질책당한다고 느끼지요. 하지만 작가는 작가로부터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조상으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죽은 자들은 과거도, 이야기도, 특정한 진실도 모두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이야기를 마음껏 탐닉하려면 결국 지나간 시간에서 온 사람들과 거래를 해야 합니다. 그 지나간 시간이 겨우 어제라 하더라도 과거는 과거이지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


마거릿 애트우드는, 우리가 글을 쓴다는 건 어둠, 즉 미로 같은 지하세계로 내려간다는 걸 의미하며, 우리가 운이 좋다면 귀한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곳에 가는 건 쉽지만 돌아오는 건 어렵다고 경고한다. 그것이 모든 작가들의 희망과 운명이라고.


네 번째 보물인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지하세계에 내려간다는 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고 마음에 든다. 물론 앞에 있는 '영영 잃어버린'을 빼면 안 될 것이다.  세월은 가고, 헛되이 나이 들어가거나 늙어간다고 느낄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보물은 사랑인데, 사랑은 영영 잃어버린 경우에도 소중한 것이고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으니.


이 책 뒤에 적힌 책 소개 중 가장 공감하는 것은 <볼티모어 선>지의 다음과 같은 평이다.


"나는 이 책 보다 우아하게 글쓰기 기술의 핵심으로 다가가는 책을 마주친 적이 없다. 영리하고, 깊은 인간미가 있으며, 용감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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