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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Jul 25. 2024

존재의 이유를 측정하는 법

네트워크 시대에 당신의 존재 가치는 얼마나 될까?

우리는 오늘날 휴대폰이나 이메일 같은 최신 정보통신 기술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소설 속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자. 


“전화는 거의 울리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찾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가끔씩 딸이나 며느리와 전화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이 전화하는 게 아니라, 그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전화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렇게 그는 존재 이유조차 불확실했다.”     


위의 글은, 우리의 전화가 울리지 않으면 우리의 존재 이유가 매우 불확실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일단 이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수용하자. 그러면 우리는 간단한 통계를 이용하여 우리의 존재 가치를 측정해 볼 수 있다. (편의상 모든 연락 수단을 ‘전화’로 통일한다. 이메일, 카톡 등도 전화 연락의 변형된 형태라고 간주할 수 있기에. )     


먼저 타인으로부터 받은 전화의 횟수를 기록하자. (당신이 직접 연락을 보낸 경우는 제외해야 한다)     

그런 뒤에, 전화 용건에 따라, 업무상 연락, 개인적인 통화 등으로 구분하여 그 빈도를 정확하게 적자. 쓸데없는 짓이 아니다. 당신의 존재 이유를 알아보는 것이므로 정확히 기록하자.     


두어 달 이상 꾸준히 통계를 작성한 뒤에, 쾌청한 여름날에 잠시 시간을 내어, 그것들을 분류하고 자세히 살펴보자.     


이제 당신이 업무적인 전화를 받은 횟수가 월등히 많다면 당신은 업무상 그 존재 이유가 아주 확실한,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친밀한 개인적 전화를 받은 횟수가 많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인기가 많은 것이므로 그만큼 자신의 존재 이유를 널리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이런 통계는 여러모로 유용하다. 예를 들면…     


당신의 통화 수신 횟수가 지난달에 비해 이번 달에 30% 줄었다면, 당신은 바짝 긴장해야 한다. 당신의 사회적 존재 가치가 30%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긴급한 통화를 자주 받는다면? 당신은 타인이 아주 긴급한 상황에 부닥칠 때 존재 가치가 높아지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경찰관, 소방관, 군대의 5분 대기조 같은 부류.     


별 볼 일 없는 전화를 많이 받는다면? 타인이 심심할 때 당신의 존재 이유가 확실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전문 용어로는 ‘심심풀이 땅콩’이라고 한다.     


카드회사에서 연체금 갚으라는 전화를 자주 받으면? 자살할 이유가 없다. 당신이 사라지면 카드사가 망한다. 따라서 당신의 존재 가치는 국가 경제적으로 아주 높다고 자부해도 된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대충만 살펴봐도 전화 수신 횟수는 당신의 존재 이유와 정비례함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몇 가지 사회학적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휴대폰이나 이메일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사회적으로 인간의 존재 이유와 존재 가치를 기하급수적으로 높여 준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제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공원에서, 식당에서, 심지어는 극장이나 공연장 등에서도,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끝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자주 친구에게 전화해야 한다. 그건 사회적으로 서로의 존재 가치를 크게 높여 주는 일이니까.     


쓸쓸한 결론도 있다.     


(먼 훗날에) 당신의 전화가 울리지 않는다면, 당신의 삶도… 거리에 나부끼는 신문지 조각처럼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다.     


그러면 휴대폰이 아예 없는 사람은? (과거 한때의 나 같은 사람)     


뭐, 아시다시피 이런 사람은 인간 취급을 못 받는다. 반사회적인 인물로 찍혀 딱히 이유도 없이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종국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점차 멀어져, 존재 이유가 희미하고 희박해진다. 결국은 지우개로 지워진, 흔적만 여리게 남아 있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고나.     



     

전화가 없던 시절, 아주 옛날 사람들은 존재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들이었을까? 그건 아니다. 무엇보다 전화 대신 상상력과 텔레파시가 발달했다. 그래서 한 방울 눈물에 담긴 그리움의 농도가 바닷물보다 짙고, 짜고, 강했다. 멀리 떨어진 상대방의 마음도 움직였다. 그 시절엔 결코 오늘날처럼 존재 이유가 쉽게 삭제되는 일이 없었다, 라고 나는 믿는다. (발밑에 나부끼는 신문지를 걷어차면서)     


전화는 수다를 위한 것이고 진정한 대화를 하려면 카톡이 필요한 세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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