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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Jul 25. 2024

어둠 속에서 뇌를 포맷하는 방법

ㅡ 어둠 속에서 뇌를 포맷할 때


*


나는 어두운 내 방에 누워있다. 방이 더워 창문을 절반 정도 열었고 아파트 복도를 지나가는 이웃들에게 방 안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커다란 쇼핑백을 하나 고이 접어 열린 창의 하단에 가리개로 끼워 두었다. 키가 2미터는 족히 넘어야 창을 통해 내 방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럴만한 거인은 근처에 없다.


설사 내 방을 누군가 몰래 엿본다한들 불 꺼진 방이라서 아무것도 식별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나는 방의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불면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밖의 가로등 불빛이 천장으로 스며든다. 기다란 사각의 빛줄기가 천장에 가로질러 걸려 있다. 그래서 그 빛의 투영에 힘입어 나는 어둠 속에서도 방의 사물들을 어렴풋이 식별할 수 있다. 책상과 의자, 책장에 나열된 무질서한 책들. 불 꺼진 형광등, 어디선가 날아들어온 날벌레의 고요한 움직임. 이제 여름이 시작되면 불청객 모기 손님도 늘어날 듯하다.


오늘 하루도 덧없이 가버리고 이제 남은 건 불면과 피곤한 심신뿐이다. 눈이 특히 피곤하고, 입술은 건조하고 뱃가죽은 허전하다. 나는 그저 누워 있을 뿐이다. 목이 조금 마르긴 하지만 굳이 일어나야 할 정도는 아니다. 움직이는 건 싫다.


어둠에 잠겨  눈을 뜨고 있는 건 따분한 일이다. 서로 열정은 식고 말다툼이나 일삼는 커플일지라도, 함께 자동차를 타고 한적하고 어둡고 낯선 곳을 여행하는 일이, 혼자서 어두운 방에 누워 있는 것보다는 만 배나 더 나은 일일 것이다. 혼자는 그저 지겨운 일이다.


나는 불을 끄기 전에 왓챠에서 B급 공포 영화를 시청했었다. 서로 열정은 식고 말다툼이나 일삼는 커플이, 함께 자동차를 타고 한적하고 어둡고 낯선 곳을 가다가 죽음의 위기에  몰려  극심한 공포를 겪는 영화였다. 타락한 세상의 저속하고 잔인한 모텔이 등장하고, 두 남녀는 그 모텔의 음험한 방에 감금되어 도촬과 살해의 위협에 빠지는 이야기였다. 폭력으로 탈출해야만 하는 어두운 세상 이야기.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 영화를 보았는데, 별다른 생각 없이 그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건, 그게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공포를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하는 세상에 사는 것이고, 그것이 좀 신기하긴 하다. 로맨스나  통쾌한 액션이 아닌, 공포를 소비할 수 있다는 건 세상이 약간 비틀어진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 역시 어딘가 한 구석 비틀어진 인간일 테고...


내가 소설을 쓴다면, 비틀어진 세상과 비틀어진 인간이 대결하는 공포소설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밤의 어둠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환한 대낮에나  비로소 가능한 작업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밤의 어둠이 주는 불면의 세상에서는 오히려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지고, 반대로 낮의 인간들이 주는 차가움의 세계에서는 공포소설 쓰기에 더 적합한 수많은 자극을 얻게 될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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