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anXpaper Aug 07. 2024

여름으로 가는 문

이제, 집에 가야 해

13의 아해들은 달리기를 멈췄다. 

눈앞에 커다란 벽이 있었고 

거기에 작은 문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건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문이었다. 겨울 세상의 그 골목은 막혀 있었고 방한복을 입은 13의 아해들은 당황스러웠다. 1번 아해가 급히 브레이크를 잡자 2번 아해도 따라 했고 3번 아해도 4번 아해도…… 13번 아해도 멈췄다. 모두 잇달아 멈췄다. 급정거로 인한 연속적인 추돌 때문에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차가운 입김이 피어올랐다. 


윽, 아, 앗, 악, 켁!     

우씨, 뭐야 왜 멈춘 거야? 

글쎄, 나도 몰라. 

형, 여기 봐. 문이 있다! 길쭉하고 네모난 파란 문이다!

와, 파란 문!

이런 건 처음 봐. 뭐지?

여기까지 누가 오자고 한 거니? 

그러게. 처음 보는 이상한 문도 있고. 

시끄러워. 조용히 해봐. 

그래, 조용히! 우리 집 문이랑 비슷해 보여. 그런데 이상해. 뭔가 달라. 

무서워!

언니, 집에 가려면 늦었어. 혼나면 어떡해. 나 오줌 마려워! 

쉿!      


13의 아해들은 고글을 쓴 채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다시 차가운 문을 바라보았다. 폐허 마을에서는 흔한 문이었으나 이상하게 시선을 끌었다. 처음 보는 막다른 골목에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모두 호기심이 일었다. 모두 한발 다가섰다. 세상은 원래 어둡고 춥지만, 골목은 불현듯 더 어둡고 추워지는 것 같았다. 뭔지 모르는 불길하고 모호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어른들은 늘 우리를 혼 내지. 멀리 가지 말라며. 


낡고 파란 문은 얼어붙은 채 닫혀 있었다. 벽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벽은 한기를 뿜으며 끝없이 높았다. 벽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사방은 조용했고 아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침묵 속의 깜박임은 서로에게 속삭였다. 


문 열어 볼까? 

열려? 

몰라. 

열어 봐. 

저것 봐, 문틈에 빛이 있어. 문 안쪽에 빛이 있어. 

열어 보자. 응? 

그래, 잠깐 기다려.      


모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파란 철제문 중앙에 동그란 청동 손잡이가 있었다. 1번 아해가 조심스레 방한 장갑 쓴 손을 내밀었다. 손잡이를 잡았다. 꼴깍, 누군가 침을 삼켰다.      


끼익!      


문은 서툴고 투박하게 움직였다. 깊고 얼어붙은 세상에서 뭔가 깨어나는 느낌. 13의 아해들이 지닌 스물여섯 개의 동광이 확장되었다. 문 뒤의 공간도 확장되었다. 아, 앗.     


여름.      


여름이었다. 문이 열리고 여름의 세상이 보였다. 하얀 파도와 백사장이 있었고, 수영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이 있었다. 바다는 더없이 파랗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있었다. 파라솔이 있었고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과일과 탄산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강아지도 신기했다.     


13의 아해들은 차례로 넋을 잃고 여름을 바라보았다.      


13의 아해들은 눈부신 여름의 세상에 감탄했다.     


13의 아해들은 매일 상상하던 그들의 여름을 향해 첫발을 들였다.      


맞아, 여름이야, 이게 여름이야. 여름이다!      


저기 봐, 수평선 위에 새도 있어. 저게 말로만 듣던 갈매기라는 새일 거야.      


저기 파도 타는 사람도 있다!     


아해들은 자신들의 세상을 모두 잊어버렸다. 눈앞의 모든 게 신기했다. 핵전쟁으로 지구가 파멸된 지 30년이 지났다. 어른들은 핵전쟁과 잃어버린 세상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아해들은 핵겨울을 증오하는 어른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여름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매일 입는 두꺼운 옷이 필요 없다는 세상, 옷을 다 벗고 맨몸으로 달린다는 세상. 덥고 뜨겁다는 태양, 그리고 달콤하게 혀에서 녹는다는 아이스크림! 콜라와 팥빙수의 세상! 말로만 듣던 찬란한 여름. 여름의 세상.     


그때,      

맨 뒤에 있던 가장 어린 아해가 주저하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 벌써 다섯 시야.

     

……이제…     

  

이제, 집에 가야 해.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 <여름으로 가는 문>을 읽다가 그냥 써 본 짧은 소설이다.  


작가의 이전글 프랑스 식 연애편지 쓰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