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건 계약이 아니었다

by Elin

캐나다에 오면서 막연히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한국이 고용주 밑에서 일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실체는 모르지만 좋은 소문은 없었다. 애초에 좋은 건 소문이 나지 않고 나쁜 것만 부풀려 소문이 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하면서 간접적으로 느껴본 연예인의 삶이 그랬다. 좋은 일은 백가지를 해도 으레 당연하거나 관심 밖의 일이 되기 일쑤지만 부정적인 면은 잘못된 정보와 사람들의 소문을 타고 금세 눈덩이처럼 불어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사정을 안다는 점을 오히려 나쁘게 이용하는 고약한 고용주가 많다는 이유로 오히려 같은 나라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신분을 보장해 주는 것을 볼모로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을 책정하거나 비현실적인 근무시간을 요청한다는 식이었다. 그런 소문을 들으며 막연히 다짐했던 내 의지는 당장 실습을 할 베이커리나 레스토랑을 찾는 것도 버거운 상황에서 사치였다.


20년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 동안 잠정적으로 모든 수업을 중단했다가 9월에 4학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코업을 해야 하는 3학기가 진행됐어야 했다. 식당이 오픈을 하긴 했지만 제한적이고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해 코업을 뒤로 미루고 일단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한다고 했다. 이론 수업은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했고, 실습수업도 교과과정보다 반절정도만 했다. 한 교실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수 제한 때문에 반을 더 여러 개로 나누느냐 불가피했던 결정이었다. 코업을 어떻게 할지 5학기가 끝날 때쯤이었던 21년 봄까지 미뤄뒀지만 그때까지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이 있었던 터라 학교는 우왕좌왕했다.


캐네디언 학생들은 졸업을 미뤄둘 수 있었지만 정해진 기간만큼만 체류할 수 있는 퍼밋을 갖고 있는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이전에 관련업종에서 일했던 서류를 제출하면 코업으로 인정해 졸업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래도 코업을 하고 싶었다. 인맥이 중요한 캐나다 취업 시장에서 인맥이 없는 나는 코업을 하는 것이 졸업 후 일자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코업은 고용주가 급여를 주지 않아도 돼서 어렵지 않게 코업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현실은 달랐다. 면접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떤 베이커리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최소 인원만 일하는 중이라 새롭게 가르쳐야 하는 신입직원을 뽑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를 졸업하면 3년 동안 일할 수 있는 퍼밋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퍼밋으로 일을 하면서 기회를 살펴 영주권도 받으려고 했던 나는, 코업이 문제가 아니라 졸업을 하더라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을 수는 있을지 두려워졌다. 그런 시점에 온타리오, 특히 런던의 많은 슈퍼마켓에 입점해 있고 대학교로도 납품을 하는 초밥업체에 H를 통해 면접을 보러 갔다. 한국인 사장에 한국인 매니저라는 점을 고려할 여유는 없었다.


런던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다른 도시에 있는 슈퍼마켓에 새로 입점을 했는데 그곳으로 이사를 가서 안정적으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신 영주권에 필요한 것을 서포트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코업자리도 찾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차후에 고려해야 할 영주권의 문제까지 해결이 될 수 있는 조건 앞에서 이사는 별일도 아니었다. 주를 이동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살고 있는 곳과 불과 1시간여 떨어진 곳이었다. 실습면접도 바로 보고 함께 일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영주권 서포트와 매니저가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있었다. 영주권을 취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매니저가 제시한 것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 것이기도 하고, 게다가 정책을 바꾼다고 임시적으로 중단한 것이라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종류였다.


이사나 새로운 곳에서의 다른 출발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코업자리도 찾기 어려운 내가 더 먼 미래를 조금 더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음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사라지자 나에게도 망설임이 찾아왔다. 한인업체에서 일하지 말라며 언급되는 고용주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면접 때 나를 대했던 매니저였지만 그럼에도 마치 운명의 짝을 만나기라도 한 듯 몇 시간을 이야기를 나누었던 매니저와 나 사이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균열이 더 벌어지기 전에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손바닥 뒤집듯 매니저는 문자 메시지로 돌연 채용을 취소하겠다고 전했다.


일한 돈을 떼인 것도 아니고 취업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고용주와 나는 서로 원하는 조건이 맞지 않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로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한국인 고용주에 대한, 소문으로만 들은 안 좋은 이유를 다 갖다 붙이며 역시 거기서는 일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거라는 핑계를 대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사실은 나 역시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마음을 더 기대고 고용주일 뿐인 사람에게 필요이상의 마음을 드러냈던 것 같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 같은 어려움을 겪었으면서 왜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척하냐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문제였다. 그리고 또 두려웠다. 이런 걸로 무너지는 내가 외노자라는 신분으로 앞으로 살아갈 수는 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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