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살고 있는데 여행에 대한 갈망이 다시 슬금슬금 올라왔다. 이미 그곳은 여행지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 되어 그렇다는 것을 또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여행가방을 챙겼다. 경비를 아끼고자 토론토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비행기 대신 환승을 해가며 밤새 가야 하는 야간 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갔다. 그마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경험해 볼 수 있겠느냐며 설렜다. 그리고 아이가 함께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며 어린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줄까 봐 미리 준비했던 계획들에서 벗어나 즉흥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들떴다.
대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고 공연제작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일하며 두 번째 겨울이었던 2009년 1월에 혼자 여행을 떠났다. 공연, 서비스직이라는 특성상 주말에도 일했고 사람들이 쉬는 시즌에 더 바빴다. 누군가와 시간을 맞추는 게 어려웠다. 혼자 하는 첫 여행이라 예상할 수 없는 변수와 길을 잃을까 봐 긴장을 많이 했다. 그 결과로 빈틈없이 촘촘하게 채워진 여행계획표를 완성시켰다. 일본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를 수십 번 들락날락 거리며 본 후기글에 있는 사진으로 목적지를 가기 위한 길을 최대한 많이 머릿속에 넣었다.
오사카와 교토를 갔었는데, 강렬한 추위 한가운데였던 한국에 비해 온화한 겨울이라 오래 걸어도 춥지 않아 여행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미리 세워 온 여행계획표대로 움직여 유명하다는 어떤 관광지에 가기 위해 매 순간 서둘렀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할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버스정거장에 적힌 버스시간부터 확인했다. 사람들의 다양한 추천 일정을 참고해 만들어 온 나만의 완벽한 일정표대로 꼭 가봐야 할 명소에 꼽히는 곳들을 5박 6일 동안 빼곡하게 다녀왔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그날 하고자 했던 것을 모두 다 함에 뿌듯했고 미션을 완료한 것 같은 만족감이 있었다. 처음 본 일본 스타일의 정원은 단아하면서도 아름다웠고 교토에서 만난 과거의 일본은 색다른 매력이었다.
여행을 다녀와 처음 혼자 하는 해외여행이었지만 꽤나 즐거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도 몇 번 더 나는 꽉 찬 여행일정표를 가지고 떠났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여행을 다녀와 왠지 모를 피곤함이 더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에 남는 것은 여행지의 어떤 장소나 분위기가 아니라 지하철이나 버스 혹은 기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한 일, 시간표를 확인한 일들이 더 많아졌다. 여행지에 있었으나 여행을 가기 전에 만든 여행일정표의 그림자에 머물고 왔던 것이다. 실제로 어떤 여행지에서 그날 하루의 일정은 한국으로 치면 아침에 분당을 갔다가 오후에 일산을 가는 식으로, 관광지에서 보낸 시간보다 지하철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것도 같다.
아무도 내가 그날 그 일을 마쳤는지 확인하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여행을 가서도 일을 하듯 그날의 투두리스트를 차곡차곡 지워나갔다. 이런 여행은 주말도 없이 일하던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주지 못했다. 여행 준 쌓인 피로로 더 짜증이 솟구치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다. 여행을 가게 되면 이동수단만 숙소만 예약하고 떠나기 시작했다. 지워나가야 할 리스트가 없으니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가고 싶은 곳으로 향했고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렀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곳을 방문하면서 그 여행지에서 뽕을 뽑았다는 표현이 제격이었던 과거에 비해 내가 방문한 곳은 현저히 줄었다. 여행지에서 더 자유로웠으며 그것은 예측하지 않았던 곳에서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드라마처럼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과 서로의 언어도 모르면서 같이 관광지를 둘러봤고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그 뒤로도 한동안 이메일을 주고받기도 했다.
뉴욕에서도 나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명품샵들이 즐비한 반짝반짝한 거리와 해가 지면 혼자 다니기는 좀 무섭겠다 싶은 후미진 길을 걸었다. 유학원에서 런던을 캐나다에서 큰 도시 중 하나라고 소개했었지만, 진짜 도시 서울에서 살다 온 내게는 시골처럼 느껴졌었다. 뉴욕은 오랜만에 만난 진짜 도시였고, 그만큼 바쁜 도시였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과 뉴요커들이 뒤섞인 혼잡스러움이 있었다. 각종 영화와 미드를 보며 쌓아 온 낭만과는 동떨어지기도 했지만, 그 틈새에서 역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숨결을 오랜만에 느꼈다.
공연제작사에서 일할 때 제휴사였던 잡지사에서 '나만의 힐링 포인트'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했었다. 아주 짧은 문장만 답해주면 되었던 거라 부담 없이 응해주었다. 나의 힐링포인트는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이라고 했다. 싱글이서 여행이 아무 때나 가능한 거 아니냐는 악플치고는 귀여운 몇몇의 항변 댓글이 달렸었는데, 아이는 없었어도 그 당시 나는 결혼을 한 유부녀이긴 했다. 하지만 나의 포인트는 아무 때나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떠날 때 미션을 수행해야 할 리스트를 만들지 않음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며, 아이를 데리고 헤매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 조금은 이전의 내 모습으로 살기도 했다. 조금씩 자라고 있는 아이를 보며 우리의 여행도 곧 다시 그렇게 되기를 바라본다. 약간의 불안은 자유가 주는 생생함에 견줄만하지 못하다.
계획 없이 다녀온 뉴욕 여행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은 미래인지 현재인지를 다시 생각했다. 2017년쯤 이민박람회에 처음 갔을 때, 몇몇 업체로부터 '돈이 없는데 어떻게...'라는 의견을 들었다. 우리는 캐나다에 온 가장 가난한 한국인이었다. 2017년에 이민 박람회를 갔지만 2019년에 캐나다에 온 것도, 컬리지에 갈 학비와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조금은 마련해 두고 와야 할 것 같아서였다. 많은 이민자들은 자신의 나라보다 교육, 경제, 생활 수준이 높은 캐나다에 이민을 오고 싶어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은 제법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캐나다, 혹은 다른 나라도 이민을 가보자고 고려하는 게 현실이었다. 물론 모든 한국인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그러하다. 그래서 실제로 런던에 와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 가정은 오자마자 당연한 수순으로 차를 구입했고, 거주지를 구입했다. 집을 바로 구매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은 외국 생활이라면 당연히 하우스나 타운하우스가 거주지라 생각하고 이천 불 이상의 렌트비를 내면서 거주하고 있었다(지금은 최소 2,700불 이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차 없이 지내려면 불편할 텐데... 세탁기 공용으로 쓰면 불편하지 않아...라는 다소 걱정과 의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차도 구매하지 않고 유닛 안에 세탁기가 없는 아파트에 살며 고정지출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조금 모아 온 돈으로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게 목표였다.
우리는 언제나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캐나다살이를 마칠 수도 있는 이방인에 불과했다. 그러니 조금은 지금의 삶도 즐겨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대화를 남편과 오래 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코로나라는, 우리가 생각했던 다양한 어려운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정말 예상치도 않았던 질병이 세계를 강타하면서 우리는 집 안에 갇히게 될 것이라는 것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