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동안 정지된 삶 같았던 캐나다는 7월이 될 무렵부터 조금씩 다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카페 이용이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했고, 야외 활동의 제한도 조금씩 풀렸다. 나도 마스코라는 업체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구인하는 포지션에 지인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얻었다. 마스코는 주택 건설용 제품을 설계, 제조, 유통하는 회사이다. 수전, 밸브, 욕실이나 주방의 하드웨어 제품 따위 말이다. 그 기업의 창고에 있는 물건을 소매점의 주문에 따라 발송을 해주는 곳에서 패키징을 하는 업무였다.
한국은 표면적으로는 학연, 지연을 따지지 않고 채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니 학연, 지연으로 자리를 꿰차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어 누군가를 허탈하게 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캐나다는 대놓고 그것으로부터 일자리를 구한다. 구직을 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는 게 아니라 지인에게 말해야 한다는 농담도 있다. 일을 하면서 나와 같은 포지션으로 잠시 일하던 학생들은 모두 누군가의 자녀 혹은 친척이었다.
물건이 쌓인 물류창고는 제품의 유형에 따라 섹션이 나뉘어 있었다. 첫날 내가 패키징을 해야 할 구역은 욕조의 마개나 싱크대의 어떤 부품 같이 작은 물건들이 있는 구역이었고, 그 구역 대부분의 주문서는 홈디포에서 온 것이었다. 홈디포는 셀프 리노베이션이나 DIY를 위해 물건을 판매하는 곳으로 캐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매점이다. 몇 달 동안 영업을 중단했었기 때문에 쌓여있는 주문서 뭉치는 금세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출근 이틀째, 매니저가 사무실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물류창고가 닫았던 때에도 주문서는 꾸준히 들어왔었기 때문에 밀려있는 주문서를 정리하는 업무였다. 유형과 일자에 따라 구분을 하면 되는,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학생 포지션으로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대부분 십 대 후반의 진짜 대학생이거나 고등학생이었다. 해외 경력이긴 하지만 사무실에서 업무를 해 본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인에게 빌려 갔던 안전화는 내 발에 딱 맞는 사이즈가 아니었고, 낯선 무게감도 있어서 카트를 밀며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한지 하루 만에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었기에 가만히 앉아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공연제작사에서 일할 때 제일 번거롭지만 제일 쉬운 건 정리였다. 한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수십 장씩 쌓인 영수증을 날짜별로 척척 정리하고 사용한 진행비의 잔액이 1원의 오차도 없이 맞는 순간은 짜릿했다. 예매처별로 다르게 측정되던 수수료율에 따른 실제 입금액을 비교해 정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입금자명과 예매자명이 달라도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다른 정보들과 비교해 가며 입금자의 주인을 찾던 건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어떤 프로모션을 할지 궁리하는 것에 비해 굉장히 단순하고 명료한 결과가 있는 일이었다. 주문서 정리는 그 보다 더 단순한 절차였다. 비교할 것도 없이 주문서에 있는 특정한 정보를 보며 직원이 요구한 대로 놓으면 되니 산처럼 쌓였던 종이의 높이는 빠르게 낮아졌다. 업무 재개로 새로 들어오는 주문서의 속도에 따라 높이는 오르락내리락 왔다 갔다 했지만 결국 내가 분류하는 속도가 새로 들어오는 주문서의 속도보다 빨랐다.
벌써 정리를 다 마쳤냐는 매니저의 놀라움과 고맙다는 눈길을 받으며 며칠 만에 패키징 업무로 복귀했다. 매일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매니저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 놓고 그날 특별히 유의해야 하는 점 등을 공지했다. 그러다 어느 날 매니저는 내가 그 전날 한 패키징의 양을 모든 직원들 앞에서 공표했다. 그전 날 나는 내가 생각해도 엄청 빠르게 많은 물건을 박스에 담고 있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 양은 실로 많아서 모든 사람들이 한 패키징수의 절반가량이었다.
사무실에서 서류 분류를 마친 나에게 매일 다른 섹션의 패키징 업무가 주어졌었다. 물건이 조금 커서 한 두 개만 카트에 꽉 차서 주문서 하나를 처리하는데도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곳이 있었고, 손이 닿는 곳에 재고가 없어서 여러 차례 다른 직원을 불러 특수한 차를 이용해 높은 곳에서 재고를 꺼내달라고 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하루가 끝날 즈음에 그 구역이 눈에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다음 날이면 다시 새롭게 적응해 나가야 하는 게 힘들었던 차에 첫날 배정받았던 곳으로 다시 배정받은 다음 날이었다.
업체와 직접적으로 업무를 보는 사무실 직원들은 다시 업무를 재개하자마자 밀려있는 주문서에 대한 부담과 고객사로부터 재촉을 받을 터였다. 그에 따라 물류창고에 있는 직원들도 빠른 업무 처리를 요청받았을 거라 짐작한다. 요령 부리지 않고 착실히 패키징을 하는 것 같은 나를 여기저기로 보내봤던 거였다. 나로부터 가장 높은 효율이 나오는 곳은 어딘지 살펴보기 위해서.
그날 나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은 주문서에 있는 물건을 박스에 담기 위해 이 복도와 저 복도를 오가며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잠시 일을 멈추고 잡담을 나눴다. 그렇다고 죽치고 앉아 노는 건 아니었다. 어제 퇴근 후에 무엇을 했는지, 오늘 별 일은 없는지 따위의 대화였다. 인맥이 중요한 캐나다에서 그렇게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자신의 인맥나무의 열매를 맺어가고 있었다.
주어진 일이 내 눈앞에 쌓여 있으면 그냥 그것이 비워질 때까지, 덜 쉬더라도 빨리 해내는 건 많은 한국 직장인의 모습이었고 나도 그냥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내가 말하는 구역 L과 R을 모두 반대로 알아듣는 탓에 말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고,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그날 주문서를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만난 사람이 웃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패키징을 했냐는 농담을 건네줌으로 누군가와 처음으로 일에 필요한 이야기가 아닌 대화 다운 대화를 했다. 그 뒤로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나도 대화에 끼고 싶다는 제스처를 소심하게 보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나에게도 몇 마디씩 말을 건네주어 오가며 더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다고 따로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사적인 만남까지 이어간 지인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밀려있는 업무를 클리어하는 것만이 나의 목적이었던 것 같은 캐나다 첫 직장생활에서, 내가 이곳에서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또 다른 모습은 무엇일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