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보다 길었던 겨울

by Elin

2020년 초부터 북미에도 코로나 확진자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며 경각심이 생겼다.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바이러스였기 때문에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놀이터에 가거나 산책을 할 때 이전과 다른 시선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뉴스에서 접한 것처럼 위협받은 적은 없었다. 그냥 조금은 서로 조심해야 할 때라는 생각만 한 채 일상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3월 말, 정말 순식간에 모든 것이 멈췄다.


학교는 기약 없이 수업을 정지했다. 그날 런던의 모든 슈퍼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리 아파트에서 코스트코가 내려다 보이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왔고 런던에 모여 사는 한인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카톡방에서는 지금 어느 슈퍼를 들어가기 위해 어느정도 기다려야 하는지 실시간으로 정보가 오갔다. 슈퍼도 앞으로 영업을 안 하는 걸까? 뭐 하나 확실하지 않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나만 하지 않는 것은 몹시 불안했다. 나도 슈퍼로 달려가 발 디딜 틈도 없는 그곳에서 생필품을 챙겨 나왔다.


일주일 정도 후, 다시 수업을 재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공지가 있었고, 학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으므로 온라인으로 전환해서 학기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직접 만들어봐야 하는 실습수업들도 그것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론 수업과 별만 다를 게 없는 형태로 학습을 하며 2학기를 마쳤다.


더 나은 미래만을 위해서보다는 현재도 적당히 즐기며 살아보자며, 원래는 일하기 전까지는 절대 사지 말자고 했던 차를 뉴욕 여행 이후에 구매했지만, 막상 갈 곳이 사라졌다. 비치나 놀이터처럼 밀폐되지 않은 공간에도 폴리스라인을 쳐 놓고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니 실내 공간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곳이 아니면 더더욱 엄격하게 폐쇄되었다.


감옥 아닌 감옥이 된 아파트에 갇혀 슈퍼만 오가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외식비가 한국보다 비쌌기 때문에 캐나다에 와서 외식을 한 횟수가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긴 하지만 강제로 외식을 할 수 없게 되니 왠지 먹고 싶은 게 더 많은 느낌이었고 그만큼 평소에 하지 않았던 종류들의 음식까지 직접 하며 열심히 집밥을 해 먹었다. 친구를 만나는 것만큼 혼자 있는 시간도 좋아했던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한국 드라마 몇 편을 정주행 하며 나름대로 그 시간을 즐겼던 것도 같다.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두려움도 있었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타국에 왔지만 한국의 체계적인 병역 시스템과, 무턱대고 모든 생활을 차단하는 것이 아닌 공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는 사회를 더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바이러스 하나로 모든 사회와 일상이 멈춰버린 캐나다에 사는 게 맞는 걸까. 캐나다에 온 지 1년 정도 된 시점에,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날 그날 무엇을 또 해 먹으며 무료한 집콕 생활을 이겨낼지를 고민했다.


남편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내가 학업을 하는 사이 아이를 돌보는 것이 역할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타인과의 교류가 이미 끊어진 채 몇 달을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나마 즐겼던 놀이터 나들이도 하지 못하게 되니 '여긴 어디, 난 누구'를 자주 느꼈겠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생각했다. 한국보다 눈이 많이 오고 긴 겨울이 끝나가던 시점이었고 차도 생겼으니 봄이 오면 조금은 다양한 캐나다를 만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던 순간 계절적인 겨울보다 더 무시무시한 심리적 겨울이 몇 달을 더 이어졌다. 캐나다 정부가 조금씩 자유를 주기 시작한 8월 말, 남편은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남편이 캐나다에 머물렀던 1년여간의 시간 중 대부분은 멋진 자연을 품은 캐나다가 아니라 오로지 딸아이의 앞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IMG_3005.jpeg


작가의 이전글알게 된다고 해도, 닮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