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겠다" 권법과 감사함의 표현방식

신입시절, 내가 배운 감사함의 방식

by 이안 영 Ian Young

고마워할 줄 아세요.


입사한 지 몇 개월이 지났을까. 새로운 팀에 배정된 후, 내가 담당할 국가의 프로젝트를 지정받았다. 처음 맡아보는 업무에, 처음 준비해 보는 해외출장. 게다가 중동권으로 분류되는 북아프리카를 제외하면 가볼 생각조차 없던 ‘진짜 아프리카’였다. 팀 내에는 해당 국가를 경험해 본 선배가 없어, 이전의 자료를 뒤적이며 그 나라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분들에게 정보를 수집해 보라는 팀장님의 조언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팀 외의 선배들에게 메신저를 보내기로 했다.


입사 초기만 해도, 팀 선배들보다 더 윗선의 선배들에 대한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긴장감이 컸다. 수십 번이나 사내 메신저에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혹시 기분 나빠할 만한 표현이 없는지 전전긍긍했다. 첫 번째 선배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더 최근에 다녀온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답했다. 나에게는 여전히 ‘선배’였지만, 그분에게는 ‘후배’였던 사람. 허무하게도 처음 보냈던 메신저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선배 역시 코로나19 이전에 다녀온 출장이라 당장 줄 만한 정보가 없다고 했다. 다만 본인의 자료를 다시 살펴보고 알려주겠다는 답변을 남겼다. 감사하다는 답장과 함께, 큰 수확이 없으니 혼자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그 선배가 복도를 지나가며 내게 해당 국가 출장 관련 조언을 건넸다. 내 자리까지 찾아온 건 아니었고, 그냥 지나가며 한마디 던진 정도였다. 나는 얼떨결에 의자에서 엉덩이를 반쯤 떼고 “감사합니다!”라고 외친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특별히 새로운 정보는 아니었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업무를 이어갔다.


그런데 얼마 후, 선배에게서 메신저 쪽지 한 통이 도착했다.


“00 씨, 저도 제 시간을 들여 정보를 찾아보고 알려드린 건데, 그런 식으로 고맙다는 인사가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선배가 도움을 줬다면 감사 인사 정도는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본인도 언젠가 선배가 될 텐데, 그런 후배가 있으면 어떤 기분일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뭐지? 나는 분명히 인사했는데?’


90도로 인사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속으로는 어이없음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였다. 심장은 벌렁거리고, ‘이러다 회사에서 고마움도 모르는 신입으로 찍히는 건 아닐까’ 수십 가지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처음엔 그냥 무시할까, 아니면 해명할까 고민했다. 사실 이런 오해 아닌 오해는 이전에도 여러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 중에 겪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억울해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을 배우게 됐다.


설령 내가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내 행동이 부족해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보면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정신승리법’ 같지만, 그래도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는 곧바로 한글 파일을 열어 답변을 작성했다. 초점은 ‘나는 인사했는데 왜 몰라요?’가 아니라, 내 행동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다시 표현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보내주신 쪽지를 보며 제가 감사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미숙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하며, 시간 내어 피드백 주신 부분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말씀 주신 내용 잊지 않고, 더 나아진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조금 오버한 것 같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분이 시간을 내어 나를 위해 글을 써준 것 자체가 귀한 일이었다.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약점을 짚어준 셈이니까. 그날 이후 나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땐, 내 기준보다 조금 더 ‘과하게’, 그리고 가능하면 ‘글로 다시 한번’ 전하기로 했다. 몇 시간 뒤, 선배에게서 답장이 왔다.


“00 씨,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나중에 시간 될 때 밥 한번 같이 먹어요. 제가 살게요.”


팀 밖 선배에게서 처음으로 받은 밥 약속 제안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의 중요성을 다시 느꼈다. 식사 자리에서는 회사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부터 선배의 커리어 여정까지 들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 선배는 몇 달 뒤 해외로 이직하며 퇴사했다. 이후 동기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자, 그 선배가 나에 대한 칭찬을 해당 팀 내에서 엄청 했다는 후일담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조금 더 체득하게 됐다. 진심이든 아니든, 상대의 입장에서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내가 바뀔 수 있는 부분을 찾고 개선한다면, 그건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을 때는, 말과 행동, 그리고 글로 표현하자.


여러분은 신입 시절,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궁금해진다.


이안 영(Ian Young)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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