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회사에서의 합격과 예비합격 사이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현재 회사에 입사하기 전, 나는 가고 싶은 회사가 명확히 있었다. 이 말은 즉슨, 그 가고 싶었던 회사가 지금의 회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해외 인턴 생활을 끝낸 뒤 석사 과정을 시작하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그 회사를 20살 때부터 목표로 삼았을 만큼 진로에 대한 걱정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와 해당 회사의 공채를 기다리며 석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지원서를 써야 하는 순간이 오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대학원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건, 그 친구들은 단순히 ‘취업’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까지 그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나는 취업을 위해, 잠깐의 텀을 채우기 위해 석사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가고 싶어 했던 두 회사에 다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 혼란스러워졌다. A회사에 다니는 지인은 “여기 오면 100% 실망할 거야, B회사가 훨씬 나아”라고 말했고, B회사에 다니는 지인은 “B는 이제 성장 가능성이 없어, A로 가야 해”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자신만만하고 선명했던 취업 계획 속에서 길을 잃었다.
다른 대안은 생각해 본 적도 없을 만큼 자신 있었는데, 지원서를 써야 하는 순간 갑자기 지원서에 거짓말을 잔뜩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사실 대학교 졸업 전에도 이미 그 회사들에 지원서를 썼었고, 그때 나는 마냥 행복해하며 글을 썼었다. ‘자소설’이라고 할 만큼 자기소개서가 100% 진실만을 담고 있진 않더라도, 나는 늘 내가 원하는 곳에 명확한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지원서를 썼기에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처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로 고민을 부모님께 털어놓은 적이 없던 나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어떤 이야기라도 듣고 싶었다. 당연히 “일단 지원이나 해보고 생각해”라는 퉁명스러운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엄마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네가 원하는 걸 향해 천천히 가도 돼.” 지원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미화된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아무런 답도 얻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걸었던 전화였는데, 그 한 통의 전화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맺혔다. 길을 잃었다는 느낌 속에서, 사실 나는 많이 불안했었나 보다. 그리고 단지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필요했나 보다.
오만함과 자신감 사이
대학원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어느 날, 지금 다니는 회사의 채용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됐다. 한 번도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이유는 모르겠어도 이름은 알고 있던 회사였다. 현재 내가 속한 글로벌 부서의 채용 계획은 2명이었는데,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를 읽는 순간 다시 심장이 뛰었다. 말 그대로 혼자 엄청난 금괴를 발견한 것 같은 기쁨과 흥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직무기술서의 모든 내용이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떤 지원자를 원하는지, 어떤 경험이 필요한지, 어떤 업무를 하는지 — 모든 게 내 경험과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마치 기다려왔던 이상형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건 무조건 붙는다.’ 그때의 나는 약간 오만할 정도로 확신했다. 이곳에서 나를 뽑지 않으면 오히려 회사가 어리석은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지원서를 쓰면서 스트레스보다는, ‘나의 경험이 이렇게 다양하게 쓰일 수 있구나’ 하는 만족감이 더 컸다. 신나게 쓴 지원서를 제출하고 면접까지 보게 됐다. 면접 준비를 하며 PPT를 만들 때도, ‘이건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라는 생각에 들떴다. 회사의 업무와 부서의 역할까지 완벽히 파악해 갔기에, 면접이 끝난 뒤에도 아쉬움 없이 홀가분했다. 그리고 당연히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합격자 명단에는 내 이름이 없었다.
면접관들이 나의 자신만만함을 오만함으로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결과는 충격이었다. 합격자 명단 어디에도 내 이름이 없었다. 조금 더 내려보니, 예비합격자 명단에 1순위로 내 이름이 있었다. 예비합격이라는 사실에 감사했어야 했지만, 그때의 나는 여전히 오만했다. 내게 예비합격은 ‘탈락의 다른 이름’이었다. 충격과 우울함 속에 한참을 걸었다. 단순히 떨어진 게 아니라, ‘이 회사에서도 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어디서 나를 필요로 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지원서 100개를 쓰는 게 기본이라던 세상에서, 고작 다섯 번째 지원한 회사 탈락에 그렇게 좌절했으니 말이다.
합격 발표가 난 지 두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지원하셨던 000회사 인사팀입니다. 000 지원자 맞으실까요?”
그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설마... 설마...?’ 대답을 하자마자 내적 환호성이 터졌다. 예비합격자에서 ‘찐 합격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합격자 중 한 명이 포기하면서, 내게 연락이 온 것이었다. 불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바닥이었던 기분이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쳤다. 세상이 나를 축하해주는 것만 같았다.
예비합격과 합격 사이, 내가 배운 것
입사 후 1년이 지난 어느 날, 부서장님께 내 합격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당연히 제가 붙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부서장님은 웃으며 말했다. “거만하네, 아주.” 진담 반, 농담 반의 핀잔이었다. 선배들은 대부분 이 부서를 두세 번 지원한다며,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를 일깨워줬다.
돌이켜보면, 그건 신입의 패기였다. 지금 생각하니 아찔한 순간. 정말, MZ 그 잡채였다. 회사를 다니면서 깨달았다. 그때의 ‘오만한 자신감’은 이제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수많은 행운이 함께했다는 걸 느꼈다. 결국 모든 건 타이밍이었다. 내가 합격했던 수많은 프로그램과 인턴십도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때가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이 회사에서, 4년 차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러분의 첫 시작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진다.
이안 영 Ian Young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