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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hyun Dec 22. 2018

개미와 함께한 두 달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그 시작은 미미했다. 돌을 깎아 만든 물건을 법적으로 보호받고 싶어 하던 분이 나에게 의뢰를 했고, 나는 그 물건을 받았다. 그런데 자연석을 깎아 만든 것이라 돌 안에 개미가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실물 사진을 찍어야 했기에 그 물건을 책상 위에 잠시 두었다가 종이 가방에 담아 베란다로 옮겼다. 돌로 만든 그것을 손으로 집어 올리거나 책상 위에 올려 둘 때 개미 몇 마리가 보이기는 했지만 조만간 우리 집을 떠날 물건이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게다가 종이 가방 안에 보관해 놓았으니 몇 마리 개미도 그 안에 머물러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그 물건은 서울로 보낼 것인가 여기서 사진으로 해결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예상보다 오래 집에 머물렀고, 그 사이 추석 연휴도 끼면서 마치 가족인 양 명절까지 함께 지내게 되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결국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서울로 보내기로 하고, 돌로 만든 그것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우리 집을 떠난 것은 돌뿐이고 돌 안의 작은 생명체는 계속 남아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머지않아 발견하게 되었다.


간혹 베란다에서 개미 한두 마리가 보였을 땐 돌과 함께 미처 떠나지 못한 아이들이라 여겨 친히 서식처(?)를 옮겨 주었다. 종이에 개미를 싣고 창문을 열어 창문 밖 난간까지 배송 서비스를 실시했다. 제발 집 안을 떠나 집 밖에서 살기를 기도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아이가 우리 집에 남아 있으리라는 위기감이 든 것은 어느 흐린 날이었다. '비와 개미의 외출'에 관한 논문이 있다면 증명되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날이 아주 흐리거나 비가 올 것이 확실한 날이면 개미가 원래 살던 서식지를 떠나 바깥-베란다-으로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흐린 날씨가 주룩주룩 비로 이어지던 날, 베란다에서 새롭게 몇 마리 발견한 것도 모자라 집 안에서도 개미가 보였다. 그날 발견한 개미가 다섯 마리가 넘었는데 처음엔 옮김이 서비스를 진행하다가 점점 더 많은 개체가 보이자 이 아이들을 얼른 없애 버려야 한다는 마음에 급기야는 죽이기 시작했다.  

휴지를 들고서 개미가 보이는 족족 눌러 버렸다. 개미는 모두 사멸했다.
개미 죽인 휴지를 들고 있는 내 모습.
처음엔 마치 내가 인자한 인간인 듯, 개미 같은 미물이라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인 듯 행동했지만, 지금껏 눈에 띈 개미보다 훨씬 많은 개미가 살고 있을 거라는 의심이 들자 그 인간은 잔인하게 변해 버렸다. 휴지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은 마치 사람 몇 명을 죽인 뒤 그 흉기를 쥐고 있는 살인자 같았다. 내 마음도 그러했다.


맨 처음 개미를 발견했을 때 집 밖 창틀 위로 옮기지 않고 바깥 땅으로 보냈으면 개미가 덜 번식했을까? 우리 집은 1층이 아니라서 행동으로 옮기기엔 어려운 방법이었지만, 처음에 개미를 살려 준 것이 과연 좋은 행동이었나 의문이 들었다. 그 개미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번식을 했고, 내가 첫 개미의 후손들을 죽인 거라면? 차라리 맨 처음 발견된 개미 한 마리를 죽이는 것이 더 많은 살생을 막는 방법이었을까?


혼란스러웠고 슬펐고 불편했다.
또다시 내 손으로 살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살인자가 된 느낌'을 받은 뒤론 개미가 보이면 다시 밖으로 내보냈다. 어느 날은 개미를 종이에 올려 창문으로 향하다가 무심코 베란다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순전히 나의 관점이지만) 개미는 별 충격 없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기어가기 시작했다. 워낙 가벼워서 그런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큰 충격을 안 받는 것 같았다.


그 후로는 보이는 개미들을 종이에 옮겨 베란다 창문 밖으로 털었다. 꽤 높은 위치이지만 가벼운 개미들이 땅에 떨어져 다시 잘 기어가기를 바라며...


이 방법을 계속 쓰면서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해서 식초도 뿌려 보고, 벌레 퇴치 팔찌도 놓아 보고, 자연친화적인 방법을 쓰려고 했지만 개미는 계속 보였다. 개미 털기 작업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다가 약국에 개미 없애는 약을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약도 개미를 죽인다는 건 마찬가지지만, 내 손으로 눌러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이래서 청부 살인을 하는 것인가...?)


개미 약을 사겠다고 마음먹은 뒤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약국 가기를 한참 미루다가 또다시 비 오는 어느 날 드디어 약국을 찾았다. 약국 한 군데에선 개미약을 팔지 않길래 다른 가게에 들렀다. 그곳에는 다양한 살충제가 있었다. 개미 없애는 약도 종류가 많았다. 어느 것이 좋은지 몰라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했고 후기를 확인했다. 거금(?) 8천원을 들여 해외 브랜드 약을 샀다. 그 약의 후기가 가장 좋았다. 이왕 사는 것, 한방에 없앨 수 있는 좋은 것으로 사자.


차일피일 개미약 사기를 미루고 있는 동안에도 개미는 나날이 늘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했는데, 약을 사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다. 이제 약 놓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포장을 뜯고 약을 베란다 군데군데 짜 놓는데, 뭔가 모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젠 더 이상 개미가 없는 것 같은 느낌, '앞으로 없을 것'이 아닌 '더 이상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개미가 이미 사라진 것 같은 적막감이었다.


정말로 그 이후론 베란다에서 개미가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도 검은 무리가 눈에 띌 정도로 개미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집 안에서 개미가 발견된 후로는 괜히 신경이 쓰여 날마다 베란다로 나가 눈에 불을 켜고 허리 숙여 개미를 찾았던 것이다.


약을 놓은 이후로는 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약 놓는 날의 느낌대로 집에 있던 개미가 모두 옮겨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남아 있던 개미가 약 때문에 전부 죽은 것인지, 사실은 아직도 개미가 살고 있는데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개미가 잠시 나와 함께 살았다는 것, 처음엔 그 개미를 살려 주다가 위기감을 느낀 순간 살충을 자행하는 인간으로 변하는 것이 나의 참모습이라는 것, 약을 놓고 나서 더 이상 개미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개미도 보이지 않게 되더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내가 집 안으로 들여놓았지만 이사 가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했던 개미.

이젠 원래 있던 자연으로 돌아가 다시 잘 살렴.
내 손에 죽은 개미들에겐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용서를 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거든.
안녕, 두 달간 함께 살았던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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