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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hyun Dec 19. 2018

나의 살던 고향은


부산에 다녀왔다. 할아버지 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 계셨던 막냇동생분이 만 89세의 나이로 며칠 전 돌아가셨고, 집안 식구 중 조문을 다녀올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급히 다녀왔다.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묻곤 했다. 어디서 왔냐고, 어디 출신이냐고.

그러면 나는 한 군데 지명을 콕 집어 말하지 못한 채 "태어나긴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서울, 경기에서 자랐고 내려오기 전에는 용인에 살았어요."라고 대답해야 했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도시의 특정 구를 말씀드리면 제주분들이 잘 모르셔서 행정구역상으로도 넓디넓은 도시 이름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도에선 4개 시에 살았는데, 용인시는 3년밖에 살지 않아서 마음의 거리로는 가장 멀고 낯선 곳이다. 그럼에도 최근 주소지가 그곳이었던 탓에 나는 졸지에 '용인 사람'이 되었다. 나이가 많은 제주분들은 용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놀이동산인지 지금의 에버랜드가 '용인 자연농원'이던 시절 가 보았다는 말씀을 하기도 하셨다.


부산에 가니, 이번에도 혹 누군가가 "당신은 어디서 왔냐?"라고 물으면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궁금해졌다. 또다시, 이전보다 더 장황하게, "고향은 부산인데 서울, 경기에서 자랐고 지금은 제주에 산다."라고 말하면 될지 아니면 단순하게 '제주'라고 하면 될지 혼란스러웠다.


한 장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오래 사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요즘은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떠올랐고, 같은 제목의 고갱 그림도 생각났다.


부산에 사는 사촌동생의 말투를 닮은 부산사람들의 사투리를 들으며, 대외적으론 너무나 정제된 서울말을 구사하는 나는 이제 부산말을 써도 어색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나는 정말 어디 사람이고 어디서 온 것인가....?



오래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댁은 송정에 있었다. 나도 그곳에서 태어났다. 해운대와 송정이 있는 동쪽은 친가 어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물론 나는 '새마을운동'이 일어난 후 태어났기에 동네의 근처 집들은 대부분 현대식으로 개조된 상태였지만, 어릴 적 잠시 살았던 할아버지 댁은 어찌된 일인지 오래도록 초가를 유지했다. 내 기억 속 그 집은 문에 창호지가 발려 있었고, 호기심 많고 장난기 많은 언니는 손가락으로 창호지를 뚫기 일쑤였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요년, 요년!" 하며 회초리를 들고 언니를 혼내셨다.

뒷마당에는 우물이 있었고 마당을 지나 사립문을 나서면 송정 바닷가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이 나왔다. 이 기억들은 어릴 적 부산을 떠나 경기도에 살면서 여름 방학 때 할머니 댁에 자주 내려가 머물렀기에 남은 것이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 중 '초가집'에 산 경험을 한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마치 '구석기 시대 유물' 바라보듯 하는 사람도 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표준 부산어를 쓰는 30대의 사촌동생도 우리가 떠난 후 할머니와 함께 그 집에 살았고, 유적처럼 남은 초가를 취재하러 온 지역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바닷가, 초가, 우물, 마당...

나열해 놓고 보니 '시어'가 되어도 손색없는 환경이 오늘의 나를 이루고 있겠구나...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40년 전, 환갑을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만약 살아 계시다면 100살쯤 되시겠구나. 40년 후 그분의 막냇동생은 구순이 되어 세상과 이별하셨다. 열 살여밖에 차이 나지 않는 형제는 40년 만에 만났을 것이다. 누군가 태어나 마흔이 될 시간 동안 세상은 변했고, 그 덕에 한 분은 장수를 누렸고 한 분은 아쉬운 듯 세상과 작별하셨다.



그날 밤, 친가 어른들의 본거지인 동쪽에 있는 장례식장에 들렀다가 서쪽 사는 이모 댁으로 가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내려오기 위해 새벽길을 나섰는데 이번엔 엄마의 고향 근처에서 지하철을 갈아탔다.


안 막히는 지하철로도 1시간 넘게 걸렸던 동쪽과 서쪽의 거리. 아빠가 엄마를 쫓아다니던 시절, "저 송정 총각 또 왔다."라는 소리를 듣던 아빠는 그 먼 길을 엄마를 보기 위해 왔었겠구나...


이번 '부산행'에선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들에 생각이 미쳤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분들의 젊은 시절...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젊은 날이 그려지는' 때가 올까? 나의 젊은 시절이 어떠했을지 누군가 상상해 보는 날이 올까?


부디 그 상상이 부정적이지 않기를...

행복하고 즐겁게 이 세상을 살고 간 사람으로 그려질 수 있기를...


작년 봄, 홀로 찾아간 고향.

벚꽃 만발한,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함께 해수욕하며 많은 추억을 쌓은 사촌오빠, 언니, 동생과 사진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내 기억 속 고향의 따뜻한 풍경이 그들에게도 남아 있기를... 변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그들에게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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