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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르스IRS Oct 18. 2022

아픔의 역설

아파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굉장히 예민했다. 누군가 화를 내고 큰소리를 지르면 왠지 나를 향한 것 같아 겁이 났고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 싫은 티 하나 내지 않았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만 남길 바랐고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면 자괴감이 들고 그 원인을 제공한 나나 외부요인에 대한 화가 치밀어올랐다. 사랑받고 싶어서 뭐든지 잘하고 싶어했다.


꽤나 힘들었다. 남자니까 남자애들이랑 몰려다녔는데 농담으로, 장난으로 던진 말들을 듣고 그 말의 표면적인 뜻 그대로를 가져와 내 마음의 상처로 만들었다. 또 남보다 못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나를 책망하는 하나의 이유로 만들어 하루 종일 괴롭혔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평생 겪어보지 못했던 마찰을 만나자 무너져내렸다. 한동안은 사회복무요원 출근을 해도, 퇴근을 하고 집에 있어도 멍하게 있었고 하루종일 휴대폰만 봤다. 좋아하던 책은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으니 멀리하게 됐고 사람들이랑 교류하는 것도 싫어졌다.


그런데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통해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특히 내가 왜 그렇게 힘들고 아팠는지를 조금은 알고 나니 내 아픔은 내 강함이 되었다. 지금도 사람을 만났을 때 굉장히 예민해지지만 일정 수준을 넘지 않는 이상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다. 나에게 느껴지는 자극들은 정보로 바뀌어 짧은 시간에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고 도움이 필요해보이면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마음이 여리지만 다른 사람을 금방 파악해 그 사람이 싫어할 법한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가장 힘들었기 때문에 지치고 절망스러웠지만 이기고 나니 오히려 그 승리의 경험이 나를 더 강하게 했다.


가끔 유튜브로 강연 영상들을 보면 자신의 아픔을 가지고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아픔을 솔직하게 공유하며 자신이 먼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좋은 정보를 공유하거나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더 쉽게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보면 빛이 나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해서 조금 더 세상을 깊은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눈으로 보이는 부분만을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더 깊은 곳에 있는 본질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같다. 자신들이 겪었던 아픔은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시야는 강점이 되어 더 넓게 보게 되고 더 정확하게 보게 한다. 아팠던 사람이 역설적으로 더 강해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삶이 기쁘고 행복하기만 할 순 없기에 각자가 가진 아픔들은 있겠지만 강해지기 위해서 불행을 바라는 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머리로나마 아픔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불행하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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