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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르스IRS Nov 16. 2022

‘메모’라는 약을 팝니다

안 사도 되니 한 번 보고만 가세요

내가 처음으로 메모장을 사용했던 건 유치원 때였다. TV에서 본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무언가 굉장히 고심하고 계산해서 적은 글씨들을 꼬부랑글씨와 선으로 표현한 것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은 노트를 하나 사서 모든 페이지에 그 꼬부랑글씨와 선을 그대로 그렸다(이때는 글씨를 정말 ‘그렸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스마트한 이미지를 따라 하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그 수첩을 계속 들고 다니면서 가끔씩 펴보며 멋있는 척을 했다.


이런 느낌이었다


중학생 때 했던 메모들은 완벽주의와 호기심의 산물이었다. 중학생 때 무선이고 위로 넘길 수 있는 메모지를 어디선가 받았는데 거기에 진짜 별걸 다 적었던 것 같다. 그때는 하루를 계산적으로 살고 싶어서 일주일 동안 고정적으로 사용하는 시간들을 적고 그 사이사이에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활동들을 채웠다. 계획을 세울 때는 10분 단위로 세우면 좋다고 들었어서 10분 단위로 계산했던 기억이 난다.


3-4년 전쯤 책을 한참 열정적으로 읽을 때는 내가 읽은 책 내용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서 열심히 메모를 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이 정말 많았는데 어느 것 하나 잊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밑줄을 치고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이 많아 귀찮아졌고 지금 그 메모장의 역할을 노션이 톡톡히 하고 있다.


19년도 말부터 나에게 메모란 내 정신적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소중한 도구가 되었다. 메모에 관한 문구 중 하나가 '메모를 하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어버리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교회에서 첫 팀 리더를 맡았을 때 처음으로 정말 다양한 일에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생겼고 내가 머릿속으로만 외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늦어버려도 아예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싶어서 그때 당시 쓰고 있던 샤오미 휴대폰을 삼성 갤럭시 노트로 바꿨다. 펜으로 필기도 가능하지만 사실 '리마인더' 애플리케이션을 쓰고 싶어서였다.


조금 당연하지만 알림 설정이 가능해서 상태창에 그 할 일을 할 때까지 띄워놓을 수 있고 위젯으로 홈 화면에 놓을 수 있어서 할 일을 확인할 때 그냥 휴대폰 잠금만 해제하면 됐기 때문이었다. PC나 다른 기기로 공유하는 게 제한되는 게 좀 아쉬웠지만 내가 필요한 점들을 볼 때는 너무나도 적합한 선택이었다.


메모를 잊어버리기 위해서 한다는 말을 조금 설명해보자면, 나는 스스로 암기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외우는 건 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워야 할 것들이 많아지면 한계가 온다. 뭔가 해야 했거나 뭔가 신경 써야 할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싶은 기분은 드는데 그게 뭔지는 잊어버린다. 게다가 뭔가 잊어버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라 그때 받는 스트레스와 사용하는 정신적 에너지는 꽤 큰 편이다. 외우는 것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뭔가를 잊어버리는 기분은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언제쯤 생각해내서 행동해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놓고 그때 뜰 알람에 대한 설명을 잘 적어놓는다면 잊어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정 기억하고 싶으면 그 메모를 다시 보기만 하면 된다.


뭔가 잊는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안 좋다


또한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준다. 어느 순간 강한 감정을 느껴서 생각이 많아지면 사람은 무언가에 집중하기 어렵다. 일을 할 때도 집중이 안 되고 특히 자려고 눕고 나서는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 생각들로 가득 찬다. 내 경험상 내가 그럴 때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이 그럴 때도 빈 A4용지나 빈 노트를 주면서 생각 나는 대로 정리하지 말고 쭉 적어보면 훨씬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하던 생각들이 적어보고 나니 그렇게 복잡한 게 아니거나 실제로 눈으로 보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이 발전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것 중 하나가 문자의 발명이라고 한다. 그림(상형문자)이나 글로 무언가를 기록해서 특정 의미를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특징 덕분에 추상적인 개념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인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한참 옛날부터 시작된 '기록'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이런 기록과 메모를 통해 여러분도 잠재력을 잔뜩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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