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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길 Jun 10. 2019

무의도行 마지막 페리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고

인천 잠진도와 무의도를 잇는 무의 연도교가 개통됐다는 인터넷 신문 기사가 떴다. 2019년 4월 30일부터 7월 29일까지는 하루 900대 차량만이 들어갈 수 있게 제한을 두었다고 한다. 다리가 개통되면 좁은 길과 작은 주차 공간으로 난리통도 아닐 거라는 무의도 횟집 주인아저씨의 푸념 어린 말이 떠올랐다. 5월 1일. 무의 연도교는 페리를 멈췄다.


나는 4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페리를 타고 무의도에 들어갔다. 트래킹 루트는 무의도 호룡곡산이다. 처음에는 차를 선착장 근처에 세워 두고 배낭만 메고 페리를 탈 계획이었다. 텅 빈 페리를 보자 게으른 마음이 생겼다. 어차피 페리에 차를 싣는 것도 마지막이 아닌가! 뚜벅이 대신 자동차로 무의도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돌렸다.

뚜벅이 대신 자동차로 움직이니 시간을 벌었다. 회나 한 접시 먹기로 했다. 페리로 10분 거리지만 무의도도 엄연히 섬이다. 왠지 자연산 막 회를 먹어야 제맛일 것 같았다. 막 썰어 젖힌 막회 대신 가지런히 포갠 광어회가 나왔다. 주인장 마음대로 주문을 바꿨다. 막 회가 떨어져서 더 비싼 광어를 준단다. 떨어지긴 무신, 원래부터 없었을 듯했다. 이 양식 광어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왔겠지.

광어 회에 갑자기 소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3년 만에 처음이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소주잔을 입에 댔다. 3년 만의 소주에는 알코올의 쓴맛은 없고, 사카린의 달달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 다음, 목구멍을 타고 술 술 넘어갔다. 함께 한 중인과 소정도 소주가 혀에 착착 감긴다고 호들갑을 떤다. 셋이서 소주 세 병을 후딱 비웠다. 중인과 소정은 회사 후배이자 백패킹 멤버다. 소정은 남자다.

맥주를 두 병 더하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빗방울과 함께 해가 지고 있다. 걱정은 없다. 기껏해야 한 시간도 안 되는 트레킹 코스다. 눈 감고 올라가도 두어 시간이다.

3년 전 어느 겨울. 과음한 다음날이었다. 출근길에 제시간 기차에 타려고 5분을 제법 뛰었다. 개찰구로 향하는 계단을 한 번에 두 계단씩 성큼성큼 뛰어올랐다 플랫폼으로 다시 내려갔다. 기차가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심장이 멎는 듯한 가슴 통증이 왔다. 기차가 섰고, 문이 열렸다지만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플랫폼 벤치 의자에 한 손을 짚은 채 땅바닥에 털썩 앉아버렸다. 숨이 조여왔다.

가끔 그런 통증이 몇 번 더 찾아왔다.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신 터라 겁이 났다. 겁이라기보다는 짜증이 났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겁이 아니라, 항상 긴장하고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짜증이었다. 한창 재미를 붙이는 트레킹이나 백패킹도 그만두어야 한다. 시작하고 싶었던 스쿠버 다이빙도 포기다. 심장에 무리가 가는 것은 모두 조심해야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우선 술을 줄였다.

여러 병원을 찾아 다녔다. 서울대학, 세브란스는 물론 혈관 전문 병원과 심장 전문 한의원까지. 심장과 혈관에 스트레스를 주는 동맥 조영술 검사만 빼고 CT 촬영까지 모든 검사를 다했다. 동맥 조영술 검사는 다른 검사에서 이상 증후가 발견돼야만 한다고 한다. TV에서 운동선수가 체력 검사를 하는 것처럼 운동 부하 검사도 했다. 심장 부하 체크를 위해 전선으로 연결된 동그란 검사 장비를 이곳 저곳 몸에 붙이고 러닝 머신을 뛰었다. 가슴에 기계 장치를 붙이고 3일간 일상생활을 하기도 했다.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왔다. 술을 마신 다음날 가끔 통증이 오는 것을 막으려면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한다. 의사란 참. 한의원에서는 심기가 약해져서 그렇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던지, 심기가 편해지는 약 좀 지어먹으라고 했다. 한 달 치 약 값이 돈 백이 넘었다. 두 달 치는 짓지 못했다.

소주를 끊은 것이 내가 심장 건강을 위해 노력한 전부다. 누가 알려준 건 아니지만, 왠지 맥주나 포도주는 괜찮을 것 같았다. 맥주와 포도주는 그래도 몸에 좋다는 발효 식품이 아닌가! 담배는 5년 전에 끊었다. 건강을 생각해서 끊은 것은 아니다. 금연의 대가로 회사에서 상금을 준다기에 가차 없이 끊어냈다. 1년간 3개월마다 머리카락에서 니코틴 검사를 했다. 담배를 끊어서 100만 원을 벌었다. 심장 검사와 약 값으로 300만 원 넘게 썼다.


산 중간쯤을 오를 때였다. 오락가락 내리던 비가 그쳤다. 회색 빛 뭉개진 구름 틈새로 노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 조금만 빨랐어도 산 정상 전망대에서 노을을 볼 수 있었는데... 회를 먹지 말걸' 방금 전까지 행복했던 과거는 아쉬운 현재로 바뀌었다. 입을 호강 시키느라, 눈 호강을 놓쳤다. 바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수풀에 가려진 노을을 잠시 쳐다봤다. 다시 산 정상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올렸다.

산 정상 전망 데크에서 노을은 아직 바다 끝에 살짝 걸쳐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카메라를 꺼냈다. 뷰 파인더에 눈을 대는 순간이었다. 렌즈 앞 코에 끼운 후드가 툭 빠지더니 발등에 떨어지나 싶더니 평평한 데크 위를 또르르 구르기 시작했다. 순간 몸은 굳었고, 두 눈동자만 굴러가는 후드를 쫓을 뿐이었다. 후드는 통통거리면서 낭떠러지 바위에 몇 번 부딪치면서 저 아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절벽의 높이는 2,3미터쯤 되어 보였다. 절벽 아래로 내려갈까 말까? 마음이 흔들리는 동안 주위가 캄캄해졌다. 포기하기로 마음을 굳히는 순간이었다. 스마트폰으로 가격을 한 번 찾아봤다. 1, 2만 원쯤 할 줄 알았던 가격은 5만 원이었다. 아! 나는 이미 머리에 헤드랜턴을 쓰고 절벽 바깥쪽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다행히 절벽은 떨어져도 죽을 만한 높이는 아니다.

한쪽 손으로는 데크 난간을 잡고, 한 발은 절벽 바위 틈새에, 그리고 다른 한 발은 갈라진 단풍나무 가지 사이에 디뎠다. 마치 큰 大 자가 바위 절벽과 나무 꼭대기에 걸친 모습이다. 양손으로 감쌀 만큼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내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 쪽으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까딱 더 휘어지면 가랑이가 찢어질 판이다. 절벽 쪽에 꽉 걸쳤던 손, 발을 떼는 순간, 나무가 내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땅바닥까지 휘어질 것 같았다. 둥그렇게 휘어진 나무의 탄성이 인간 투석기처럼 나를 캄캄한 허공 속으로 튕겨 날려 버릴 것 같았다.

몸은 큰 대 자가 돼서 나무와 바위 사이에서 한참을 매달렸다. 말이 한참이지 찰나였는지도 모른다. 나무로 몸을 옮길 것인지, 바위 쪽으로 다시 가던지 결단이 필요했다. 5만 원은 컸다. 눈을 질끈 감고 나무 꼭대기로 몸의 무게 중심을 옮겼다. 몸무게가 100퍼센트 나무에 실렸다. 나무가 점점 땅바닥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나무에 꽉 잡고 꼭 매달렸다.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나뭇가지가 휘면 뛰어내릴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다행히 나무는 나를 튕겨 버리지는 않았다.

캄캄한 수풀 속에서 렌즈 후드를 찾아냈다. 그 난리에 어디에 긁혔는지 바지 엉덩이 부분이 찢어졌다. 등산복이어서 망정이지, 평소에 입는 바지였으면 버려야 할 만큼 찢어졌다. 꿰매거나 기은 자국이 있는 등산복은 험한 산을 탔다는 자랑스러운 상처처럼 보이기도 하지 않은가!. 세탁소에서 바지 엉덩이를 누비는데 5천 원 들었다.

4월 27일 토요일 무의도 선착장. 육지에서 들어오는 페리의 문이 열리고 자동차와 사람들이 한 줄로 내리기 시작했다. 새 다리를 개통했다는 사실에 더해지는 진실은 무엇일까? 어제 횟집 주인아저씨는 누구를 위한 다리인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든지 오갈 수 있는 다리 때문에 식당이고 펜션이고 다 망할 거라고 했다. 주말이면 수없이 밀려드는 차량 때문에 무의도는 아수라장이 될 거라고도 했다.

확실한 것은 가까운 섬 여행 하나가 없어졌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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