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엄마의 방
<엄마의 방>
가겟방을 열었을 때, 코를 찌르는 곰팡냄새와 보증금을 다 까먹고 나간 세입자의 짐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상가 관리가 안 되자, 엄마는 젊었을 때, 돈을 모아 방을 하나씩 만들어 세를 주었던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이가 다섯에 노망 난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는 9급 공무원이었던 시절, 엄마는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는 아홉 식구 입에 풀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동에서 장사를 크게 하던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난 엄마는 학교는 국민학교만 나왔지만 보고 배운 것이 돈을 버는 일이었다. 기본적인 글은 읽고 쓸 수 있었고 셈이 빨랐다. 엄마는 시골에 옷 가게나 화장품 가게 하나 없는 걸 보고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25일, 엄마는 아빠가 여섯 시 퇴근하고 돌아오면 월급 30만 원을 몽땅 들고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동대문 시장으로 갔다. 동대문 시장에서 옷을 떼고 남대문 시장에서 미제 콜드크림, 루주등을 사다가 팔았다.
엄마가 공무원 월급날인 25일 새벽시장에 다녀온걸. 아는 아줌마들이 아침밥을 지어먹기가 무섭게 집으로 몰려왔다. 엄마는 화투판을 벌였다. 돈을 딴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서 옷을 사고 잃은 사람들은 마음이 울적하니 기분을 내려고 옷과 화장품을 샀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 화투판을 벌이면 꼭 개평을 걷었다. 한판에 백 원씩만 걷어도 열판이면 1천 원이었다. 당시에 짜장면이 오백 원이었고, 점 백 원 화투를 치던 엄마는 화투판을 두세 번만 벌여도 아빠의 한 달 월급을 벌어들였다. 공무원이고 고지식했던 아빠는 집에 아줌마들이 들어와 화투를 치는걸. 극도로 싫어했지만, 꽤 많은 돈이 들어온다는 걸 안 뒤로는 묵묵히 참아냈다. 아빠는 월급 이외의 수당이나 보너스는 모두 할부 책 사는데 쓸 수 있었다. 엄마는 아이를 많이 낳았으나 아이를 돌보거나 내조를 하는 것보다는 돈 버는 게 좋았다. 다행히 아빠는 돈 버는 일보다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아이들과 노는걸 더 좋아했다. 아빠가 사다 나른 책들 덕분에 우리는 얌전히 책을 보았고 공부도 잘했다. 아빠가 6시면 집에 돌아왔고 엄마는 6시면 집을 나갔다.
엄마는 돈을 은행에 저금하지 않았다. 노란 황금 장판 아래 깔았다. 돈이 모이면 그 돈으로 인부를 사서 방을 하나씩 늘려갔다. 월세 방이 하나 늘 때마다 돈은 금방 금방 불었다. 엄마는 타고난 장사꾼이었다. 아이가 다섯이나 되었기 때문에 학교 앞에 집을 샀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래 있어야 편하고 안전하다는 이유였다. 엄마는 길 쪽으로 향한 방 하나를 개조해서 문구점을 열었다. 어릴 적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면 우리 집에는 아이들이 준비물을 사려고 난리였다. “시장바닥” “전쟁통”이런 말이 무슨 말인지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우리 집은 아침마다 아이들로 "시장바닥"이 되고 "전쟁통"이 되었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몰려와 물건을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엄마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도 십원 한 장 더 주거나 덜 준 적이 없었다. 엄마는 매일 1시간만 아침 장사를 했다. 학교가 파하는 시간이 되면 다섯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가게를 봤다. 하굣길에도 아이들은 꼭 문구점에 들려서 떡볶이도 사 먹고 괜히 기웃거리며 지우개며 샤프, 종이인형들을 구경했다. 대형잉어를 뽑는 뽑기도 했다. 돈도 꽤 벌었지만, 엄마는 결코 문방구 주인아줌마로만 머물지 않았다. 엄마는 옷도 팔고 화투도 치고(화투를 쳐도 잃은 적이 없다고 했다.) 방 10개에서 꼬박 월세도 받고, 여행계도 만들어 열심히 관광도 다녔다. 관광을 다니면 아줌마들은 엄마한테 옷을 사 입고 화장품을 샀고 엄마는 아줌마들을 모아 온 대가를 관광버스 업체에서 받았다. 그렇게 엄마는 돈을 모아서 방을 10개까지 만들고 월세를 받자, 여관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여관은 험한 일이라고 아빠가 반대했다. 여관은 퇴직한 경찰이나 건달들을 끼고 해야 한다고 했다. 가정적이고 아이들을 전적으로 맡아 돌봐왔던 아빠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는 일은 아니라고 판단을 내리신 것 같다. 고집이 센 엄마였지만 아빠의 말을 들었다.
엄마는 여관대신 돈놀이를 시작했다.
엄마는 젊은 시절, 방을 늘려서 돈을 모았던 기억에 머물러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한걸 보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건물주가 되는 게 소원인 시대에 월세방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다니!
나는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순댓국집이 독고노인이 살 것 같은 원룸으로 바뀐 걸 보고 기함했다.
“미쳤어 미쳤어!” 이 거지 같은 방에서 뭘 팔 수나 있을까?
왜 나는 이렇게 되는 일이 없나 한숨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