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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y 01. 2019

알제리를 여행하는 방법

알베르 카뮈, <결혼, 여름>을 읽고

언덕들이 수선화로 뒤덮이고, 꽃 속의 앙상한 작은 별장들로 가득 차는 것은 이때다. 바다가 저 아래서 약간 으르렁거린다. 그런데도 벌써 해와 산들바람, 하얀 수선, 야생의 푸른 하늘 그 모두가 여름을, 그 때 해변을 뒤덮는 금빛 젊음을, 모래 위에서의 긴 시간들과 저녁의 갑작스러운 다사로움을 상상케 한다.

알베르카뮈, <결혼, 여름> 중에서







금방 가버릴 것 같은 가을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 선선한 바람을 깊게 들이마신다. 스피커에서는 저녁을 알리는 방송이 흐른다.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와 죽을 먹는다. 그런 뒤에는 책상이 아닌 침대에 앉아 저녁 독서를 준비한다. 창문을 열자 벌레와 함께 짙게 쌓인 먼지가 눈에 들어온다. 모른 척 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 방치해둔 것 같다. 창틀 청소를 끝낸 후에야 안도한다.

태양이 수많은 빛을 흩뿌리고 모습을 감추자 어둠이 엄습한다. 먼지와의 전쟁으로 자연광 독서에 실패한다. 해가 짧아지는 계절, 할 수만 있다면 벤치에 앉아 매일 책을 읽고 싶다. 전등이 아닌 햇빛 아래, 자연광에 꿈틀대는 글자들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타인의 문장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최선을 다해 느끼고 싶다. 불을 켜고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읽는다. 그의 말에는 짙은 호소력이 배어 있다. 그렇게 종이 안의 알제리를 여행한다. 가보지도 않은 알제리의 황혼과 덧없는 저녁, 붉은 구름 떼가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러다 작가가 말하는 결혼과 여름의 의미를 나만의 방식으로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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