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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Feb 28. 2020

일주일을 모으다

안온하고 고요한 일주일, 사랑하는 이들과 보내는 시간

당신의  주는 평안했나요?


월요일 

아마도 열한 번째 학기. 이쯤이면 개강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나는 여전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간다.  첫날부터 조금 늦긴 했지만 교수님의 우아한 미소를 보고 다짐한다. 월요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복학생 오빠에게 전화를 건다. 그는 배고프다고 투정하는 내게 나긋한 목소리로 기다려달라고 답한다. 사실 새 학기가 진짜 설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캠퍼스 커플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우체국에 들러 미국으로 보낼 서류를 처리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는다. 우리의 점심 식탁은 햇살 아래 찬란히 빛난다.


화요일

오전 열 시, 일주일 중 가장 두렵고 행복한 시간. 선선한 바람과 커피잔이 가을을 알린다. 피아노 너머에서 들려오는 교수님의 질문에 금학기 일정을 천천히 읊는다. 수업은 월요일과 화요일 오전이 전부. 그 사실은 곧 큰 파도를 일게 한다. “그럼 남은 소중한 시간은 뭘로 채울 거니?” 잠시 주저한다. “네가 가곡을 더 깊이 공부하면 정말 잘할 것 같구나.” 문장의 마침표는 실기 곡을 바꾸자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결국 도서관에 들어가 악보를 찾는다. 눈썹을 가만히 두지 못한 채로. 종이 위의 바람을 느릿느릿 읽으며 책장을 덮는다. 문득 어떤 희망사항이 생긴다. 보내기 아쉬운 학생이 되는 것.


수요일

그가 도서관에서 시를 해석하는 동안 연습실을 지킨다. 복잡한 화성과 전쟁을 벌이며 건반을 누른다. 지루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두 손은 어느새 음표에 익숙해진다. 가끔 굳은 다짐을 잊어버리고 엉엉 울기도 하지만. 악보를 전부 이해하게  , 우리는 구겨진 종이가 아닌 소리의 시간을 기억하겠지. 그리고 싸울 가치가 있었다고. 그래서 쟁취한 거라고 외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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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일곱 시, 오빠가 일 하는 가게에 도착한다.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슬리퍼 차림으로 인사한다. 얼마 후 화려한 만찬이 차려진다. 요리사는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순식간에 그릇이 비워지고 우리는 웃음을 터뜨린다. 꿀이 안 와서 피자를 못 먹는다는 전화에 분노한 남자의 표정을 보고 만 것.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쏟아지는 비를 모른 척하고 걷는다. 빗속에 숨어 투명한 눈빛을 주고받기도 하고, 미소를 나누기도 하면서. 그는 말한다. 지금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느껴지냐고. 나는 대답했다. “너는 이제껏 상상만 했던 일이 현실이 되니까 신기하지? 나는 상상도 못 한 일을 경험하고 있어. 둘 중에 어떤 쪽이 더 기적일까? 아마 둘 다일 거야.”


목요일

피아노 앞에 앉는다. 마음을 안온하게 하는 첼로 소나타로 하루를 연다. 연습을 마친 후 약속 장소로 향한다. 갈색빛이 도는 건물에 들어가 반가운 미소를 보낸다. 짧은 근황을 나누는 것으로 소중한 재회가 시작된다. 아늑한 원목 인테리어에 찬사를 쏟으며 나무가 주는 행복에 대해 말한다. 예비 신부의 선택은 녹차 티라미수와 망고 케이크. 달콤한 케이크가 아닌 가치 있는 대화에 마음이 녹는다. 반짝이는 조각을 천천히 기록한다. 삶의 많은 부분에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것. 그렇게 인연의 끈을 이어가는 것. 청첩장을 가방 속에 넣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


금요일

동기 언니를 만나 든든한 아침을 먹고 도서관에 들른다. 그녀는 마지막 학기가 꽤 어색하고 서운한 듯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한다. 그래서인지 두 여자의 대화는 끝 모르고 깊어진다. 그 심연에 남는 건 빛나는 도전과 용기. 그리고 반짝이는 꿈. 아마  해의 끝무렵, 우리는 해가 지고 다시 떠오르던 날들을, 그러는 동안 실패하고  일어섰을 어떤 순간을 회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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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열한 시, 4층에 온 빈을 만난다.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일도 넘쳐나지만, 간절함을 모른 척하고 연습을 이어간다. 점심 먹을 때쯤 만나자는 말로 당신을 보낸다. 한낮을 라흐마니노프로 채운다는 일에 감탄한다. 소리가 부서지기도 하고 손톱과  사이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의 음악은 모든   용서할 만큼 가치 있다고 믿는다. 청춘의 한때를 바쳐서 빛나는 작품을 만드는 . 얼마나 귀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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