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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Feb 27. 2020

병원에서 보내는 아빠의 생일

늦은 저녁의 소소한 케이크


8월의 마지막 
엄마의 수술 소식을 듣는다. 어설픈 솜씨로 반찬을 만들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다시 돌아온 병원, 70 병동 냄새가 익숙하게 느껴진다. 병실 문을 열고 엄마에게 웃으며 인사한다. 환자는 지친 기색으로 웃어 보이고 딸은 그런 그녀가 어서 회복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엄마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 수원에서 만난 리찬이 이야기가 오래전 어느 날로 이어진다. “네가 100일이 되던 , 아빠가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어. 너를 작은 할머니께 맡기고 병원에 갔는데, 전화가 오는 거야. 지영이가 계속 운다고. 아빠를 지켜야 해서  수도 없는 상황이고, 너는 보고 싶고. 어떻게  수가 없어서 엉엉 울었지.” 스물여섯 살의 어린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다. 엄마가 지금 강인할  있는  이유는 눈물을 흘리며 단단해졌기 때문이겠지.


간호사 선생님께 외출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그녀는 냉정하게 고개를 젓는다. 환자가 안정을 취해야 하기 때문. 울상을 지으며 병실로 돌아온다. 모처럼 다 같이 모여 외식하나 했더니. 아빠에게 케이크를 사 오라고 전화를 건다. 무슨 케이크를 먹겠냐는 물음에 “치즈!”하고 외친다. 생일자의 의견이 아닌 철없는 남매의 기호에 케이크가 결정된다. 그는 일이 끝나지 않았다며 늦을 거라고 말한다. 다 큰 딸은 엄마에게 투정한다. 아빠는 왜 매번 약속에 늦는 거냐고. 엄마가 대답한다. “일하시느라 그렇지.”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 식탁을 펼치고 싱거운 반찬을 입으로 욱여넣는다.


저녁을 먹은 후 블라인드를 걷는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놓고 몸을 유연하게 한다. 목 아래 쌓인 설움이 천천히 바닥에 깔린다. 곧 평화가 내려앉겠지. 비록 방 안을 채운 건 텔레비전 소리지만. 생일자를 기다리는 동안 가는 8월의 조각을 종이 위에 남긴다. 엄마와 딸의 연못 산책. 그 잔잔한 시간을 회상하며 그림을 완성한다. 구름에 전한 내 마음이 꼭 엄마의 회복을 바라는 것처럼 소중히 떠 있다.

저녁 아홉 시, 아빠와 동생이 병실에 도착한다. 그들은 새끼 고양이의 탄생을 알린다. 그러던 중 반가운 전화를 받는다. 호주에 있는 동생이다. 그녀가 한국에 온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놓인다. 통화를 마치고 파티를 준비한다. 화재감지기가 울릴까 봐 촛불은 켜지 않는다. 미리 축하하는 아빠의 생일 파티, 휴게실 의자에 나란히 모여 조용히 노래를 부른다. 케이크 반을 잘라 간호사 선생님들께 드리고 함께 달콤함을 나눈다. 병원에서 보내는 생일을 기념하며 사진도 찍고.


아빠에게 선물을 건넨다. 그는 눈빛을 반짝이며 박스를 열었고, 안에 담긴 벨트를 보자마자 미소를 짓는다. “저번에 산 것보다 더 좋은 거야. 엽서는 집에 가서 읽어.” 다정한 시간이 시작된다. 구석에 앉은 엄마 아빠는 각자의 하루를 꺼내고 나는 그들의 눈빛을 읽는다. 익숙하고 오래된, 그러나 아주 소중한 사랑이 어려있다. 아빠가 새끼 고양이가 얼마나 작은지 설명하는 동안 나는 마당에 기어 다닐 꼬물이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아마도 열 시 반쯤, 깊은 밤을 울리는 소소한 대화는 아쉬운 듯 막을 내린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침대에 누워 기도한다. 아빠의 남은 날들이 늘 평안하기를.


생일 축하해요, 사랑하는 아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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