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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Feb 26. 2020

한 생명을 만났을 때 깨닫게 되는 것

이를 테면 엄마의 마음이나 삶에 대한 감사, 또 사랑의 여러 가지 형태

찬이를 만나러 가는 
찬바람이 이불 안으로 엄습한 아침, 빗소리를 듣고 우산을 챙긴다. 어젯밤의 눈물이 작아진 눈을 증명한다. 가장 예쁜 모습으로 가고 싶었지만 실패다.  밖은 여름이다. 바닥에 떨어진 능소화를 지나 기차에 오른다. 어느덧 리찬이가 세상으로 나온  100일이 흘렀다. 많은 것을 궁금해하며 펜을 든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서로의 존재를 마주할까. 엄마가  솔빈 언니는 어떻게 변했을까,  새로운 보금자리는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되었을까.


망포역 3번 출구, 찬이를 안은 언니를 만난다. 우리가 수원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그녀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를 눕힌다. 모빌과 장난감이, 아이의 용품이 생겼다. 인형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웠다. 꼭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다. 언니는 말한다. 리찬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또 얼마나 행복한지. 한 사람의 인생에 누군가 가득 찬다는 것, 아마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하겠지. 아이에게 입을 맞추고 끊임없이 사랑의 신호를 보내는 일을 보며 엄마의 마음을 느낀다.


주문한 음식이 배달되고, 만찬이 차려진다.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찬이의 울음소리가 집을 울린다. 엄마는 식사를 멈추고 나긋한 목소리로 아이를 달랜다. 리찬이가 잠들면 다시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하지만 아이는 금세 깨어나 사랑하는 엄마 품에 안긴다. 분명 언니는 허기를 다 해결하지 못했을 텐데, 어쩐지 행복해 보인다. 그 장면을 보고 깨닫는다. 사랑의 모양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식사를 마친 오후, 두 여자의 수다가 시작된다. 무릎 옆에 놓인 청포도와 아메리카노가 달콤한 오후를 선물한다. 얼마 만에 함께하는 티타임인지. 잠든 찬이가 깰까 가까이서 속삭이기도 하고, 또 울고 웃으며 시를 읽는다. 나는 그간의 일들을 늘어놓으며 여러 감정을 말한다. 여름을 보내는 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구나. 그녀는 지난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미소 짓는다.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연습하고 연주하며 한때를 보내라는 말에 꿈이 피어난다. 집으로 돌아가면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지. 꿈꾸고 사랑하고 춤추면서,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지.


예쁜 찬아, 엄마는 훌륭한 사람이란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줘. 엄마가 밥 먹을 땐 모빌을 보면서 웃거나 낮잠을 자렴.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땐, 네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다음에는 함께 동물원에 가자! 드디어 만난 리찬이와 씩씩하고 용감한 언니에게 무한한 사랑과 축복을 보내며, 우리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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