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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r 01. 2020

우리가 나눈 말들

우리는 여행 말고 나들이를 떠나요


사랑하는 가족들과 보낸 시간

오전 일곱 시, 부엌을 정리하고 아침을 먹는다. 할머니는 감자볶음을 만들고 잠이 많은 둘째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잠시 동안 거실이 분주해지고 아빠가 차에 오르면서 모든 소란은 잠잠해진다. 얼마쯤 달렸을까, 산맥 아래 늘어진 구름이 감탄을 자아낸다. 나의 외침에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본다. 얇은 정적을 깬 건 할머니의 웃음소리. 그녀는 15년 전, 어느 비행의 기억을 꺼낸다. “뱅기를 탔는데 창문 옆에 눈이 한가득이라. 구름 속에 드가 앉은 줄도 모르고.” 창밖으로 퍼진 하얀 구름을 보고 눈이 내린 건 줄 알았다는 말에 모두 폭소한다.

추풍령 휴게소. 차 밖으로 나간 유일한 사람은 아빠. 그가 휴게소에서 빈손으로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얼마 후, 차 문이 열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부스럭 소리와 함께 호두과자가 시야에 잡힌다. 아기새들은 한 마리씩 모여들어 입을 벌리고 봉투는 금세 동나고 만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일기를 쓰다 보니 낙동강이 보인다. 할머니가 마늘을 어깨에 이고 장에 다녔던, 비가 올 때면 학교에서 돌아오던 아빠가 배를 탔던 길.

​상주 우물 1리. 가을장마가 끝난 추석에는 청량한 하늘과 환한 미소를 머금은 가족들이 있다. 무거운 박스를 든 동생과 윤서는 게임을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준영이와 나는 아빠 뒤를 쫓는다. 앞장서서 걷자는 7세 쪼꼬미를 설득한다. “1등은 안 좋아. 맨 앞에 있는 사람은 늘 거미줄에 걸리거든.” 많은 이들이 여행을 가지만 우리는 산에 오른다. 둘째는 도토리를 줍고 숙모는 모기 퇴치제를 꺼낸다. 나무 덤불을 지나는 동안 오래된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번엔 아빠의 과거다. “예전에 아빠가 이 나무 조각으로 깡통을 돌렸어.” 어렸던 아빠는 보름이 되면 친구들과 산에 다니며 모험을 즐겼다고 한다. 딸은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 어떤 기억을 안고 살아갈까.

왔던 길로 되돌아가던 중, 인서가 말한다. 호주에서 지내는 동안 캥거루를 봤냐고. 동생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작은엄마가 묻는다. “캥거루 배에 아기도 넣고 다녀?” 햇살이 드문드문 비치는 곳, 익숙하고 편안한 냄새가 나는 자연에서 피크닉을 시작한다. 송편을 입에 넣고 얼음물을 막 들이킨다. 멜론 한 통이 비워지자 매트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킨다. 산맥 아래로 낡은 컨테이너 박스가 보인다. 모두가 옆 마당에 생긴 정자에 모여 대화를 나누거나 운동 기구에 달려가 몸을 움직인다.

​식당을 찾으러 낙동까지 갔다가 소통의 부재로 혼란을 겪는다. 한 팀은 상주로, 한 팀은 안동으로, 또 다른 팀은 구천으로 간다는 말에 몇 번이나 전화를 하고 겨우 목적지가 정해진다. 차 안에 있는 쪼꼬미들이 끝말잇기 게임을 제안한다. 콘도, 도라에몽, 몽쉘, 쉘부르, 르네상스, 스파게티. 과연 끝나긴 할까 싶은 게임이 몇 번 이어지고, 얼마 후 안동에 도착한다. 닭갈비와 피자, 주먹밥, 그리고 볶음밥. 우리가 수저를 놓지 않으니 과식은 당연한 결과. 그렇게 긴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안동 집에 모여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소파에 누운 세 명은 기절하듯 잠에 빠지고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자동차 경주를 즐긴다. 오후 네 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 사랑하는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한다. 진한 포옹은 우리의 만남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메리 추석, 우리는 이렇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서로의 곁에서, 좋은 기운을 나누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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