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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r 01. 2020

아침 운동을 시작하다

하루는 운동장으로, 어떤 날은 호숫가로

나의 운동 일지
[목표는 일단 성실하게 일어나는 것]


01

새벽달에 감탄하는 일로 하루를 연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기온은 어제보다 더 떨어졌다. 등산을 갈지, 어제와 같은 운동을 할지 고민하다 후자를 택한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코스로 달란다. 산책로가 아닌 캠퍼스.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길을 지나는 동안 몸의 열기가 더해진다. 군인 신분에서 갓 벗어난 그는 구령을 외치며 전진하고, 나는 그 뒤를 쫓으며 짧게 호흡한다. 체력이 좋은 지도자를 만났다.
“박지영 후보생. 힘들면 걸어도 됩니다.”
“그래도 됩니까?”
“한 번쯤은 괜찮다고 해도 되지 않습니까?”

연못을 돌아 다시 운동장으로 가는 길, 아직 도로는 한산하다. 차가 다녀도 한 두 대만 있을 뿐. 앞에서 들리는 구령을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묻는다. “도로에 차?” 빈은 대답한다. “우로 밀착.” 체력은 한계를 느끼지만 웃음은 멈출 수 없다. 운동이 끝난 아침, 아직 체력이 남은 듯한 당신이 말한다. 한 팔로 나를 들어보겠다고. 쪼르르 매달리자 나를 들더니 인상을 찌푸리는 빈. “뭐, 몽골 풍습? 참나. 우리 꼭 비 올 때 몽골 가자. 우산 들고 한 번 보자. 누가 여자를 한 팔로 들고 걸어가는지.” 오래전 어느 여름, 거센 빗줄기에 우산을 쓰고 몽골 친구와 터미널에 가는 길이었다. 그는 나를 한 팔로 안고 횡단보도에 생긴 웅덩이를 건넜다. 아직도 그 날 일을 기억하는 내 남자친구는 가끔 귀여운 질투를 한다.


02

오전 7시 반, 어제보다 한 시간 늦게 집을 나선다. 둘 다 수업이 없는 수요일은 마음이 넉넉해지기 때문. 오늘은 산으로 향한다. 강한빈과 아침 등산이라니. 그것도 모자라 내가 끌려가고 있다니.. 어쩐지 자존심은 상하지만 당신이 곁에 있다는 사실은 모든 걸 용서한다. 가쁜 숨을 내쉬며 도착한 정상. 나는 팔 굽혀 펴기 열 개를 하고 빈은 나의 다섯 배를 기록한다. 천천히 산길을 내려가 산책로를 크게 돈다. 어제보다 낮게 뜬 달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자 그가 말한다. “그만해. 쟤도 부담스럽겠어.” 여덟 시의 운동장. 다시 낮은 철봉을 잡는다. 30개를 겨우 채우고 쉬다 오기가 생겨 스무 개를 더 한다. 오늘의 운동은 이것으로 끝.


아침은 소고기 볶음밥, 점심은 샐러드 베이글, 저녁은 김밥과 라면. 끼니는 절대 거르지 않는다. 연습실에 향하는 도중, 가을 하늘을 만난다. 아름다운 순간에 취해 해야 할 일을 잠시 잊고 싶지만, 봐야 할 악보가 산더미다. 옆에 있는 남자 친구도 졸업 연주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고. 해서 우리는 당분간 환상 속 장면을 기억에서 지울 것이다. 예를 들면 주말을 여행에 반납하는 것, 멀리 있는 바다와 사랑하는 숲의 소리 같은. 대신 주어진 자리에 충실하며 아주 가끔 한눈을 팔 생각이다.


03

축복의 길 계단을 따라 달린다. 맑은 하늘 아래 심장 박동수가 점점 높아진다. 그는 힘들어하는 내게 멈춰도 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고개를 젓고 더 나아간다. 연못에 닿을 때쯤 속도를 낮춘다. 혼자 아침 운동을 하던 날들이 짧게 스친다. 당신이 곁에 있길 바랐던 소망이 모여 현실이 되다니. 미소를 머금고 운동장으로 향한다. 오늘도 나는 팔 굽혀 펴기 50개, 빈은 150개를 해낸다. 어쩌면 운동에 재미를 붙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침은 감자 샐러드를 넣은 앙모닝, 점심은 가지 덮밥. 배를 채운 후 학교에 간다. 악보를 펴고 호흡을 맞춘다. 레슨이 시작되면서 평범하게 흐를 줄 알았던 하루에 큰 변수가 생긴다. 소중한 날들을 어떻게 채워 나갈지, 큰 산을 어떤 길로 오를 건지 고민하며 대화를 나눈다. 영원 같은 순간을 마주한다. 찰나의 조각이 세 사람의 마음을 이어준다. 거센 파도에 휩쓸릴 위기가 있을 테고 강풍에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04

금요일 아침, 날이 흐렸다. 그래서일까, 둘 다 늦잠을 자고 일곱 시 반쯤 확실한 목적지를 정했다. 오늘도 학교 운동장. 도솔 터널 옆에 있는 이름 모를 산에 가려고 했지만, 며칠간 쌓인 피로와 귀찮은 마음이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흐린 날씨도 한몫했고. 결국 오늘도 팔 굽혀 펴기와 달리기로 아침을 맞는다. 트랙 두 바퀴를 달린 후, 근처 벤치로 향한다.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아침 방송을 듣는다. 실패가 성공을 만든다고 하지만, 실패하고 싶지 않은 청춘들에게 바치는 누군가의 말. 산뜻한 노래에 고개가 저절로 움직여진다. 비록 계획했던 등산에 실패했으나 소박한 피크닉을 즐겼으니 그걸로 됐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보려고 했던 영화도 오후로 미뤄둔 채 휴식하기. 주말엔 비가 온다던데, 아무래도 운동을 쉬는 게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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