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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r 02. 2020

엄마, 아프지 마세요

이제 내가 할 일은, 우주에 닿을 수 있을 만큼 간절히 기도하는 것.


나의 사랑하는 안식처

완연한 가을이 왔다고 믿는다. 비록 오후에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로 몸을 피하지만, 저녁이 되면 베란다 문을 닫아야 한다. 집으로 돌아와 잠옷을 입는다. 당신의 연락을 받고 작은 불을 켠다. 달이 아주 밝다는 말에 미소가 번진다. 어쩐지 램프가 필요한 밤. 은은한 향과 빛이 스투키 옆을 지킨다. 짧은 계절에게 속삭인다. 잠시만 멈춰주라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천천히, 느릿느릿 지나가 주라고. 어지러운 마음을 잘 달래며 사색한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어느 곳을 향해 걸어야 하는지.

​아끼는 그릇을 깨뜨린 날, 덤덤한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조각을 줍는다. 냉장고 안에서 늙어가는 가지를 꺼내고 양파를 써는 동안 뺨이 촉촉하게 젖는다. 엄마가 해준 반찬을 그리워하며 그녀가 일러준 레시피대로 요리한다. 이제는 비 오는 날 ‘김치전이나 해 먹을까.’ 하고 프라이팬을 꺼내기도, 한가한 날엔 반찬을 잔뜩 만들어 놓기도 하고.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끝내고 어지럽혀진 집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는다.

저녁 무렵 동생이 전하는 소식에 눈물을 쏟는다. 엄마가 또 아프다는 것. 이제는 좋은 일이 생길 법도 한데, 왜 시련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걸까.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어쩌지 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자 옆에 있던 빈이 어깨를 감싸 안는다. 그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울어도 돼.” 늦은 밤의 아지트, 많은 기억의 조각을 꺼낸다. 당신의 위로가 밤바람을 막아준다. 엷게 퍼지는 온기에 기운을 얻는다. 마음 어딘가에 생긴 생채기는 더 이상 깊어지지 않는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우주에 닿을 수 있을 만큼 간절히 기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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